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런던올림픽을 보면서 영국은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나라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수백 년 전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공장의 굴뚝들이 자리 잡았던 런던의 동쪽인 이스트 엔드의 슬럼가에 웅장한 위용을 과시하는 올림픽 경기장들을 지었고, 영국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밝은 미래를 제시해주는 올림픽 개막쇼를 펼쳐 한때 해가 지지 않았던 ‘대영제국’의 영화를 다시 보는 듯했다.

올림픽 개막쇼의 문화콘텐츠는 정말 장관이었다. ‘경이로운 섬’을 재현한 런던올림픽 주경기장은 공장의 굴뚝이 인터넷의 WWW와 휴대폰의 SNS로 이어지게 된 산업사의 현장이 되기도 하다가, 여류소설가 J K 롤링이 <피터팬>과 <메리 포핀스>를 읽으며 <해리포터>를 구상했던 문학사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또한 2000년대의 인기 그룹 악틱 몽키즈가 1960년대의 전설적인 팝그룹 비틀즈의 ‘Come Together’를 연주하는 음악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브리티시 인베이젼’은 현재도 진행형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총연출자 대니 보일 감독의 바람대로 ‘영국 특유의 모습’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개막식의 마지막을 책임진 비틀즈 멤버였던 폴 메카트니의 ‘Hey Jude’의 후렴구는 개막식의 모토인 ‘세대에게 영감을’ 전 세계인에게 불어넣었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라라라’의 의성어 음구는 영국의 문화유산을 통해 전 세계가 하나가 됨을 보여주었다. 1908년, 1948년에 이어 세 번째로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된 것은 런던이 재탄생함과 아울러 영국이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했음을 과시해줬다는 데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럼 한국에게 이번 런던올림픽은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을까? 그것은 아마도 영국과 같이 재탄생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국가체제도 미처 갖추기도 전에 국민들의 후원금을 모아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 선수단이 출전한 1948년 런던올림픽은 참가 그 자체에 뜻을 두었다. 배와 열차 등을 이용해 20여 일 만에 런던에 도착한 선수단은 독립국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외교적인 첨병의 역할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처음 출전한 선수단은 일제로부터 독립한 아시아 동쪽의 자그마한 나라의 존재감을 세계 주요 참가국에게 알렸다.

국민소득 60달러의 가난한 나라로 올림픽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선수단은 첫 대회 참가치고는 나름대로 좋은 성적도 올렸다. 역도의 김성집이 첫 동메달을 땄고, 복싱의 한수안도 역시 동메달을 추가하며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게양되는 것을 가슴 벅찬 감동을 맛봤다. 또 마라톤의 최윤칠은 35㎞까지 1위로 치고 달리다가 물을 먹지 말라는 코치의 주문으로 105년 만에 닥친 더위를 먹고 탈진, 아깝게 경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64년 만에 이번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은 ‘스포츠 르네상스’를 구가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남북한의 민족전쟁, 4.19 민주혁명, 5.16 군사혁명 등을 거치고서도 고도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G20 국가의 일원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경제력에 못지않게 스포츠 국력에서도 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건국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은 1984년 LA올림픽을 계기로 강대국으로 발돔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 동서 간의 화합과 세계 평화를 이끌었던 대한민국은 이후 10대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위세를 떨쳤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10-10(금메달 10개, 종합성적 10위 이내)’을 목표로 세운 대한민국 선수단은 사격 진종오, 여자 양궁 단체전 등에서 금메달을 추가하며 대회 초반부터 순조로운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북한도 여자 유도 안금애, 남자 역도 엄윤철 등이 금메달을 획득하며 예상치 않은 금메달 돌풍을 일으켰다. 남북한을 합치면 금메달 수에서 대회 초반 중국, 미국 등과 겨뤄볼 만한 성적인 것이다.

64년의 시차를 두고 엄청나게 달라진 대한민국의 선수단은 성적뿐 아니라 ‘스포츠맨십’에서도 높은 품격과 명예를 유지해 각국 선수단에게 귀감이 됐으면 싶다. 현대 스포츠의 발상지 영국의 ‘젠틀맨십’에서 유래된 ‘스포츠맨십’은 정정당당한 자세로 공정한 경기를 추구하는 것을 말하는데, 대한민국 선수단은 메달에 연연하기보다는 떳떳한 승부로 인간미 넘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64년 전 약소국이었던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하게 스포츠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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