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칠월이 가고 곧 팔월이 다가온다.

필자는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책을 그리 많이 읽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유년시절 틈나는 대로 삼국통일의 주역이라고 하는 관창과 김유신 등 화랑들의 이야기와 황산벌의 영웅 계백장군 그리고 113만의 수나라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수양제를 살수에서 몰살시킨 영웅 을지문덕 장군을 포함 안시성 전투의 영웅 양만춘 장군, 10만의 거란군을 흥화진에서 물리친 고려의 강감찬 장군, 세계 4대 해전 역사에 이름을 올린 이순신 장군은 물론 외국 위인전으로는 나폴레옹을 빼놓을 수 없으며 처칠과 잔 다르크 정도의 위인전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내려가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함께 기르던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소년시절을 지나 청년시절을 맞으며 잠시 문학에 눈을 돌리던 시절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괴테의 파우스트 등 외국 문학에도 잠시 관심을 갖기도 했었다. 물론 그 밖에 여러 가지 책도 접하기는 했겠으나 그다지 감명과 감동으로 지금까지 추억할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이 접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같은 시절 유독 필자가 어설프게나마 몰입할 수 있었고 또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장르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의 문학이었다.

이 시기에 탄생한 한국의 문학은 문학의 차원을 넘어 정신이며 생존의 몸부림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잔혹한 일제치하에서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이육사)”와 같이, 또 “우리 청년 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윤봉길)” 등 절제된 표현으로 백성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조국의 독립을 승화시켜 노래했던 시와 글이 오늘날 문학이란 용어로 표현됨에는 어쩌면 사치가 아닐까 조심스레 평가해 보면서도 한편으론 진정한 문학은 처절한 투쟁으로부터의 산물이 아닐까라고 반문해 보기도 한다.

필자는 바로 이러한 저항 시와 수필과 소설을 접하던 청년시절 내심 혼잣말로 읊조리던 말이 떠오른다. “나도 그 시절 태어났다면 조국의 광복을 위해 저들과 같이 멋진 삶을 살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당시 그들이 목숨 바쳐 찾은 이 나라가 과연 진정한 광복을 맞고 있는 것인가를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겉으론 자유를 찾았는지 모르지만 속으론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날 우리는 창살에 갇힌 광복에서 진정한 광복으로의 회복이 필요한 때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사상과 의식과 가치관은 그 어떤 신(神)에 의해 철저히 사로잡혀 한 발자국도 진보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 편견에 사로잡혀 ‘다름과 틀림’도 구분 못하는 지경에 처해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바로 제2의 광복을 통한 우리의 정신문화를 회복할 때임을 잊어선 안 된다.

또한 그것이 사실이라면, 60~100여 년 전 그 시절 젊은이로 태어나 조국의 광복을 위해 멋진 삶을 살기를 원했던 필자라면 지금 이 시대, 즉 ‘창살에 갇힌 광복’을 다시금 회복하기 위해 저항 시와 글을 통해 사로잡힌 백성들의 생각과 정신을 계몽하고 선도해 빛 가운데로 나아오게 함으로써 진정 이 시대의 영적 광복군의 사명을 다해야겠다는 각오가 절로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시대에 과연 선비가 있는지 묻고 싶다. 혹자는 선비를 정의할 때 ‘학문을 닦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선비의 본뜻은 원래 이렇다.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단 앞에서 자기 씨족을 보호하고 그 씨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를 맹세하는 젊은이를 선비’라고 단재 선생께선 정의했다. 그러나 우리는 글만 읽고 세상에 대한 실제 경험이 없는 사람 같이 탁상공론이나 하는 백면서생(白面書生)들로 변질돼 있는 선비들이 세상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있다. 또 그들의 말에 실제 끌려가고 있다. 신라 제1의 문장가 강수선생은 “가난하고 비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오, 도를 배우고서 실천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고 하셨다. 오늘날 과연 이 시대에 진정한 선비는 있는가.

며칠 전에는 안철수 교수가 힐링캠프에 나왔다. 그는 학업을 통해서 학문을 익혔다. 그리고 배우고 익힌 것을 교수생활을 통해 연구하고 가르쳐 왔다. 그리고 그는 배우고 연구한 내용들을 가지고 사업을 했다. 교수 생활과 사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바로 그의 삶의 철학이 됐다. 즉, 이 말은 어려서부터 특별한 각오와 남다른 좌우명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구별지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는 안 교수에 대해 평소에 관심도 없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면 솔직한 표현일 게다. 그러나 그의 표현 중에 필자의 귀를 쫑긋하게 하는 단어가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삶의 연장선에서 나온 한마디 “나는 상식의 편이다”는 한마디! 그 어떤 철학도 좌우명도 비전도 공약도 이 상식 앞엔 당할 수가 없다는 지론을 필자도 늘 해왔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상식’에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와 나라가 편견과 편파 그리고 역행과 파행이 아닌 이치와 순리와 진실이 흘러 모두가 잘사는 그야말로 공의와 공익 즉, 세계평화와 번영의 실체인 홍익인간을 실현하는 나라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요체가 됨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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