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문화칼럼니스트 소설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는 바람둥이다.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것으로 만들었다. 마음먹은 대로 몸을 바꿀 수 있는 변신의 달인이기도 해, 구름이나 비 혹은 백조 같은 동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런 남편을 둔 아내 헤라는 늘 노심초사했고, 그 때문에 질투의 여신이란 별명을 가졌다.

제우스는 헤라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아름다운 이오를 흰 암소로 둔갑시켰다. 하지만 헤라는 암소로 변한 이오를 데려다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로 하여금 감시하도록 했다. 아르고스는 한꺼번에 모든 눈을 다 감는 법이 없는 ‘모든 것을 보는 자’였다. 그러나 제우스의 부름을 받은 헤르메스의 아름다운 연주에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백 개의 눈이 모두 감겨 버린 것이다. 헤르메스는 이 틈을 타 아르고스의 목을 베 버린다. 헤라는 아르고스의 눈들을 떼 내 공작새의 꼬리 깃털에 달아주었다.

아르고스는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지성인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인다.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사명으로 하는 언론인들이 스스로를 아르고스에 비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요즘은 직업인으로서의 언론인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 모두가 아르고스의 눈이다.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정보를 얻거나 확산하는 데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 속 아르고스가 헤르메스의 아름다운 음악에 홀려 백 개의 눈을 일시에 감아 버린 것처럼, 언론의 눈이 가려지고 그 때문에 여론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때로는 개인의 인생이 송두리째 파괴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사람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고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익숙한 정보를 우선적으로 선별해 받아들이는, 선택적 인지(Selective perception)를 한다. 듣기 좋은 말에는 반색을 하지만, 싫은 소리에는 귀를 틀어막고 외면하는 것이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만 어울리고, 생각이 다른 이들과는 담을 쌓고 원수처럼 지내는 것 역시 선택적 인지의 결과다.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못 본 척, 모른 척 덮고 넘어 간다.

파이낸셜타임스와 골드만삭스가 2011년, 올해의 비즈니스 서적 최종 후보에 올린 ‘의도적으로 외면하기’의 저자 마거릿 헤퍼넌은 사람들의 ‘의도적 외면’ 때문에 위기가 반복된다고 말한다. 의도적 외면이란 타조가 수풀에 제 머리를 박고서 숨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불편한 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거나 생길 가능성이 있을 때 그것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른 척 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헤프넌의 말에 따르면, 돈을 셀 때 뇌의 특정 부위가 반응을 해서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것이 마약이나 맛있는 식사를 할 때와 똑같다. 뇌가 돈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 차게 되면 마약을 했을 때처럼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계속해서 돈을 좇게 된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계속 돈을 좇다 치명적인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

사람들로부터 소통이 안 된다며 원망을 듣는 것은 선택적 인지 혹은 의도적 외면을 해 온 탓이다. 사탕 발린 소리에는 귀를 열고, 약이 되는 소리에는 귀를 닫아버린 것이다. 돈 혹은 권력에 취해 귀를 닫고 질주했던 그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이 얄궂고 민망한 행렬은 어디서 멈출까?

백 개 아니라 수천만 국민의 눈이 다 아르고스의 눈이다. 그 눈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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