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서울시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회의실에서 심야근로를 하고 있는 완성차·지하철·철도·병원 등의 근로자들이 심야근로를 하면서 일어났던 사건과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퇴직 후 5년 산다는 농담도”… ‘올빼미’ 근로자들 건강에 적신호

완성차·지하철·병원 등
근로자들 한자리에 모여

“야간노동, 피할 수 없다면
시간 줄여야 건강권 보장”

[천지일보=이솜 기자] “밤에 잠을 못 자면 낮에 자면 된다? 소주 한 잔 없이는 낮에 잠들기가 힘듭니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잠 깨는 것이 다반사고요.”

“동료끼리 퇴직 후 5년까지밖에 못 산다는 말을 장난처럼 해요. 웃으면서 말해도 속으론 얼마나 무섭겠어요.”

“사회생활이 전혀 안 되는 거죠. 남들 잘 때 일하고, 다들 일할 땐 내가 자 버리니까.”

지난 12일 ‘올빼미’ 근로자들이 모였다. 비단 장시간 근로 문제의 가장 고질병 같은 사업장인 제조업만의 일이 아니다.

이날 밤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철도·지하철 근로자와 병원 근로자들, 주간2교대를 실시하고 있는 사업장의 근로자가 모여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심야노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완벽한 근로 형태는 없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닌 건강을 우선시하는 근로 형태다. 심야노동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

이번 집담회를 주최한 곳은 금속노조 유성기업이다.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의 주요 부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로 지난해 5월 이곳 노동자 550명이 파업을 벌였다. 이들의 요구는 ‘밤에는 잠 좀 자자’는 것이었다.

실제 자동차 부품업체의 장시간 근로 관행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달 고용노동부는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자동차·트레일러 제조업체 40곳과 금속가공제품 제조업체 8곳의 근로시간을 감독한 결과 95.8%인 46곳이 연장근로 법정한도(주당 12시간)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자동차 제조업체 중 교대제를 활용하는 곳은 약 43.7%를 차지한다. 이 중 대부분이 심야 근로(오후 24시∼오전 6시)를 포함하는 주야2교대제다. 앞서 2007년 국제암연구소는 주야 2교대를 발암추정 요인으로 분류한 바 있다.

이정훈 유성기업 노조 올빼미단장은 지난 1987년에 입사, 5년간 야간작업을 했었다. 그는 “새벽 2시 이후로는 라인이 돌아가는 중에 서 있어도 졸게 돼 있다”며 “그것은 둘째 문제고 중요한 것은 퇴근을 해도 잠을 못 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체리듬이 바뀌기 때문에 퇴근을 해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호소에는 야간 근로자들이 모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성이 야간 근로를 할 때 문제로는 역시 임신과 출산이 꼽혔다. 현재 분만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울성모병원 노조의 이영미 씨는 “야간 노동을 많이 하는 여성 근로자의 경우 임신과 출산이 원활하지 않고 유산율이 굉장히 높다”고 전했다.

충북대병원 노조 조복희 씨는 1994년 4월에 입사, 14년간 야간 근로를 했다. 그는 “밤 근무 시간이 다른 때보다 좀 더 길다”며 “밤 근무를 이틀 연속으로 할 때 정신이 멍해져서는 영양제를 줘야 하는 환자를 못 챙길 뻔한 적이 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야간 근로 후 4년이 지난 지금, 조 씨는 아직도 밤에 자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까지 잇따른 역무원의 자살과 역주행으로 공론화된 지하철 근로자의 인력난과 장시간 근로 문제 역시 다시 등장했다. 현재 3조 2교대 근무 중 새벽 근무자는 법정 근로시간인 8시간을 초과하고 있다.

서울지하철 노동조합 김현상 대의원은 “역무에서 매년 5~6명씩 죽는다”며 “지하철 교대 근무자들이 퇴직 후 5년을 못 산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말뿐 아니라 정말 퇴직 후에는 원래 생활에 적응하기조차 쉽지가 않다는 말이 들려온다”고 말했다.

서울철도노조 장해철 서울시설지부장의 사업장 근로 형태는 3조 3교대로 6일 중 이틀은 야간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는 “야간을 연속으로 할 때에는 판단력이 많이 흐려진다”며 “특히 열차 불빛과 자동차 불빛이 섞일 땐 어느 선로에서 열차가 오는지 파악이 힘들다. 열차감지기를 세워놓아도 그것을 놓치는 빈도가 더욱 높고 이 때문에 사고 위험을 항상 달고 산다”고 토로했다.

근로자들의 이 같은 고충에 노사 간의 협의를 맺고 근로 형태를 바꾼 사업장도 있었다. 자동차 협력업체인 두원정공은 지난 2010년 9월부터 주야맞교대에서 주간연속2대로 근로 형태를 시행하고 있다.

두원정공지회 엄정흠 대의원은 “이번에 건강 설문 조사를 한 결과 10년 전에 비해 모두 건강이 좋아졌다”며 “이전에는 술을 먹고 겨우 잠드는 생활이었다면 요즘에는 자신의 계획을 세워 운동을 하거나 공부, 취미생활 등을 즐기는 동료가 많아졌다. 돈을 더 준다고 해도 다시 주야맞교대로 돌아가자고 하면 절대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노조원들에게 돈보다 건강이 우선이라는 공감을 얻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조합원 교육을 지난 2006년부터 실시해왔지만 실제 도입할 땐 또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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