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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근무제부터 난항… “이번 연도 개정안 추진 힘들 듯”

강하게 의지 보이던 정부
5개월 만에 재계에 ‘항복’
노사정 모인 자리에서도
자기 주장… “성과 없어”

[천지일보=이솜 기자] “사업장에서 휴일근로를 통해 법정근로시간을 자의적으로 연장시키는 나쁜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 장기 근로에 따른 각종 폐해를 근본적으로 시정하겠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시간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

지난 1월과 5월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이다. 수차례 근로시간 단축을 외치던 이 장관의 입장은 6개월이 지난 지금 사뭇 달라졌다.

지난 5월 25일 고용노동부는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는 데는 모두 공감하지만 실행 시기에 이견이 있다”며 “시간을 갖고 장시간 근로 개선안이 포함된 근로기준법 개선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며 법 개정을 보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앞서 재계와 지식경제부 등이 제기했던 “갑자기 휴일근로를 제한하면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 경쟁력이 떨어진다”라는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계획은 사실상 현 정부 임기 중에는 추진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을 아예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안 개정안 추진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 길고도 험난한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

올해 초 이 장관의 발언으로 시작된 ‘근로시간 단축’이 경영계와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지만 실제 근로시간 단축의 추진은 그 역사가 상당히 길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 줄이기의 역사는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에서 시작된다. 이때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 1일 8시간, 1주 48시간을 법정기준근로시간으로 규정했다.

이후 근로시간단축이라는 주제가 본격적으로 경영계와 노동계에 이슈로 등장한 것은 故 김대중 정권의 공약이었던 ‘주5일 근무제’ 실행 단계에서부터다.

이를 위해 1998년 2월 제1기 노사정위원회가 근로시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동의, 2000년 10월 근로시간 단축 관련 기본원칙에 합의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노사정의 합의가 전무하기 때문에 이는 노사정 역사적 대타협으로 기록되고 있다.

기본원칙 합의 후 노사정위원회는 100여 차례의 회의를 거쳤으나 임금 보전, 법정 휴일 단축 등에 대한 이견으로 2002년 7월 최종합의가 결렬됐다.

이에 노사정위원회는 그간의 논의 결과를 정부에 보냈고 정부에서는 이를 토대로 10여 차례의 관계 장관회의를 거쳐 정부 입법안을 단독으로 마련했다.

정부는 2002년 10월 법정근로시간을 주40시간으로 단축하고, 휴가·휴일제도를 국제 기준에 맞게 조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 법률안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해 노사 양측이 또 반발, 법안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다가 2003년 8월 29일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통과된 개정안은 최초 정부안이 유지되면서 시행시기만 1년 늦춰, 2004년 7월로 시행되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종업원 20인 미만 중소기업에 주40시간제가 적용됐다.

이는 2004년 1000명 이상 대기업을 시작으로 도입된 주40시간제가 7년 만에 5인 이상 모든 기업으로 확대된 것이다.

◆ 일직선 노사정… “문제점보다 대책을”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 의지를 보인 이후로 노동계와 재계는 각각 토론회 등을 열며 저마다의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나 서로 어떠한 사항을 합의하거나 진전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같은 말을 주장하는 데서 그칠 뿐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근로시간 단축 현황을 전체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실근로시간단축위원회의 회의록을 통해 단적으로 볼 수 있다.

노·사·정 대표 각 3명과 공익위원 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지난 3월부터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8회째를 맞는 지난 5월 회의에서도 노동계와 재계는 서로의 입장을 제시할 뿐이었다.

이에 정부 측은 “실근로시간단축위원회 논의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문제점 및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근로시간 단축 방향과 대안 제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실근로시간단축위원회의 한 관계자도 “여전히 처음처럼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데서 그치고 있긴 하다”며 “지금까지는 회의를 통해 별 성과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 역시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처음 고용노동부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려는 법 개정 움직임을 보이자 노동계는 환영과 동시에 이를 ‘법 개정’을 통해 실시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노총은 먼저 고용부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지침을 내려 장시간 노동 관행의 원인을 제공해왔다고 지적했다. 복잡한 법 개정 없이 과거의 지침을 변경, 연장근로 한도에 휴일근로도 포함된다는 올바른 행정지침만 내리자는 것이다.

이에 고용부 관계자는 “행정해석을 통한 것보다는 법 개정을 통한 방법이 영향력이 크다”며 “현재 법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행정지침으로만 30년 이상 진행된 관행을 바꾸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노총 금속노조 김지희 대변인은 “행정지침을 바꾸는 것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대해 검증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사업장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받으면 더 제대로 된 법으로 개정할 수 있는데 결국에는 이마저 미뤄지는 결과를 낳지 않았는가”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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