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반발 “재벌 개혁과 동일시돼선 안 돼”

[천지일보=김일녀 기자] 당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위한 경제민주화 논의가 최근 이념논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모습이다. 정·재계가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는 데 아전인수격으로 활용하면서 원래 취지인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결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국민에게도 크게 와 닿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몇 년간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문제로 지적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자 정치권에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는 지적을 받게 되자 헌법 조항에 명시된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왔다.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2항으로 인해 재벌 개혁 논의가 거세지고 각종 규제 법률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면 재벌 규제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정치권은 재계의 주장이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며 비난하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한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대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규제와 기업가 정신을 훼손시키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또 경제민주화라는 개념 자체가 포괄적이어서 경제주체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김현종 한경연 연구위원은 “이성적인 판단과 객관적인 근거 없이 감정적,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은 물론 또 다른 정치 논리를 낳게 되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일관성 있고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경제민주화 논의에 정부와 여당까지 가세하고 나서면서 재계의 반발도 거세다. 경제민주화 추진은 찬성한다는 입장이면서도 충분한 논의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민주화 추진이 재벌 개혁과 동일시돼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반(反) 대기업 정서가 기업인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저해함으로써 결국 국가 경제 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우선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 자체가 중구난방이라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의 국가 경제 성장을 위한 활약이나 노력 등은 고려하지 않고 기업을 매도하는데 급급한 것 같다”며 “경제민주화는 헌법 119조 1항이 원칙이고 2항이 보완적 관계라는 전제 아래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는 또 유럽발 금융위기가 여전히 진행형인 데다 중국 경제 성장세도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기업 환경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한국경제를 견인하는 수출기업인 대기업을 압박하는 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재계가 ‘시대정신에 뒤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 배경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실제 문어발식 기업 확장 등으로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소기업적합업종은 제조업을 대상으로 지정돼 있지만 최근 5년간 30대 재벌기업의 늘어난 계열사 897개 중 700여개가 부동산업·금융업·유통업 등 비제조업이다. 이는 결국 재벌 대기업들이 투자 위협은 낮으면서도 수익은 쉽게 올릴 수 있는 서비스업 위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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