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솔로몬저축은행 임석 회장으로부터 3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그것도 압도적인 표 차이였다.

대체로 무난히 가결될 것으로 봤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겠다던 새누리당의 대국민 약속과도 부합하기에 이날의 부결 처리는 다소 충격적이다.

물론 정두언 의원의 억울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임석 회장을 이상득 전 의원에게 소개시켜 준 죄밖에 없고, 이상득 수사에 대한 물타기라는 그의 항변도 설득력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내내 온갖 음해와 핍박을 받았던 바도 잘 알고 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특권을 누리지 않겠다며 검찰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던 그의 발언도 진정성 있어 보인다. 따라서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법리적 논란은 있을 수 있다.

새누리당,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정치는 법치의 영역을 넘어서는 소통과 공감의 장이다. 법정에서는 법대로 하자는 말이 정당할 수 있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오히려 기득권 세력의 횡포로 들릴 수 있다. 법적 책임보다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정치적 리더십의 요체인 것도 이런 배경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의 지도부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퇴장하는 것도 법적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영역이다.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은 법리로는 어떨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국민을 속인 것에 다름 아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며 국회 쇄신을 수없이 외쳤던 새누리당의 대국민 약속은 결과적으로 공염불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새누리당은 불체포 특권을 비롯한 국회 쇄신책을 총선 공약 수준으로 실천하겠다고 공언했던 터다. 그래서 19대 국회를 열지 못한 데 대한 책임으로 지난 5월의 국회의원 세비도 스스로 반납하지 않았던가. 그 또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이번의 체포동의안 부결은 스스로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비 반납도, 국회의원 특권 포기도 한낱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대선용 정치쇼’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더욱 가관인 것은 새누리당 홍일표 원내대변인은 이한구 원내대표의 사퇴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박주선 의원에 대한 부결표도 대부분 민주당에서 던진 것이고 정두언 의원에 대한 부결표도 민주당에서 전적으로 주도했다”며 사태의 책임을 민주당으로 돌렸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의 무능과 전략 부재, 안이한 현실인식에 대한 자성과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번에도 야당 탓으로 돌리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의 수준이 이런 정도이니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은 어쩌면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반 국민이라면 범죄 혐의가 있을 경우 즉각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이다. 그러나 정두언 의원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그대로 살아있고, 새누리당이 그것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원칙과 신뢰, 국민과의 약속을 수없이 강조했던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이미지에도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새누리당도, 박근혜 전 위원장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쇄신을 외치고, 아무리 국민에게 약속을 해본들 그때뿐이라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를 엄중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남의 탓을 할 계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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