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천지일보=이지수 기사] “67년 만에 좋은 소식이 있으려나 실낱같은 희망으로 여태껏 살아왔는데 참으로 비통해. 너무 분해서 잠 한숨 못 잤어. 지금 내 속이 말이 아니네.”

지난 9일 미쓰비시 중공업과 근로정신대피해자 간의 배상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는 소식에 양금덕(83·사진) 할머니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양 할머니는 태평양 전쟁이 있던 1944년 5월 나고야에 있는 미쓰비시 중공업 항공 제작소에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13살부터 15살까지 2년간 혹독한 노역을 해야만 했다.

“전투기에 페인트칠하는 일은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이야. 그런데 13살인 내가 뭘 알아. 일하고 있어도 빨리 안 한다고 발로 차고 화장실 갔다가 늦게 온다고 또 때리고 얼마나 서러웠는지 몰라.”

양 할머니는 당시 나고야에서 일어난 큰 지진으로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쇳덩이가 옆구리를 파고 들어가는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진사고 후유증으로 오른쪽 몸을 다 못 써.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또 일했으니까. 옆구리에 500원짜리 동전만 한 흉터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어.”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할머니 지원단’은 지난해 11월부터 미쓰비시 측과 모두 16차례 협상을 해왔다. 그러나 미쓰비시 측은 이미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국가 간에 해결된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남자도 아니고 어린 여자아이들을 데려다 2년간 일을 시켰는데 보상할 수 없다니 양심이 있는 사람들 같으면 그럴 수 있나. 이 일에 발 벗고 나서주지 않는 정부에 대한 아쉬움은 한도 끝도 없어. 그래도 67년간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무관심하던 일을 시민이 나서주니까 고맙지.”

양 할머니는 죽어서 눈을 감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생의 남은 한 가지 소원은 그들의 사죄를 받는 것이라고.

“돈은 둘째 치고 사죄를 꼭 받아야 내 한이 풀리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도 눈을 못 감아. 분이 나서 못 참아. 악착같이 끝까지 싸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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