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월드컵 축구를 수십 년간 지켜봤던 것은 스포츠 기자로서도, 축구팬으로서도 크나큰 행복이었다. 기자가 되기 이전인 개구쟁이 소년시절 때부터 월드컵 축구를 즐겼다.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올랐던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은 서울 시내의 한 극장에서 축구영화로 봤다. 잉글랜드 월드컵이 끝난 지 얼마 안 됐던 때로 기억나는데, 잉글랜드 월드컵의 주요 경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영화화했었다. 당시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TV 중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국내서는 영화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TV 중계가 이루어졌던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때부터는 대부분의 월드컵 경기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1960년대 펠레, 에우제비오, 1970년대 베켄바워, 캠페스, 1980년대 로 로시, 마라도나, 1990년대 호마리우, 지단, 2000년대 호나우두, 박지성 등이 월드컵 그라운드를 질주하던 모습들이 아련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2일 새벽(한국시간) 벌어진 유로 2012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4-0으로 꺾고 우승한 스페인 팀이 세계 축구 역사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할까 궁금해졌다. 스페인의 최근 성적을 놓고 보면 분명 세계 축구사에 새 이정표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3대 대회 연속 우승(유로 2008, 2010 남아공월드컵, 유로 2012)의 위업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깊이가 있고, 조화로운 스페인의 골은 모두 4명의 선수가 각각 기록했다. 다비드 실바, 호르디 알바, 페르난도 토레스, 후안마타 등이 골고루 골을 터뜨렸다. 스페인은 녹아웃경기에서 10회 연속 단 하나의 골도 허용하지 않으며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본선에서 12경기 무패의 행진도 이어갔다. 바야흐로 스페인 전성시대인 것이다. 이쯤 되면 스페인이 역대 축구팀 가운데 가장 위대한 팀으로 평가받을 만하다는 얘기가 나옴직하다.

매력적이지만 관대한 스타일의 스페인 팀이 축구 역사에서는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아마도 축구에 정통한 팬이라면 역사상 최고의 국가대표팀으로 펠레, 리벨리노, 자일징요 등이 활약한 1970년 멕시코월드컵의 브라질 팀을 뽑을 것이다. 이미 다양한 세계 각국의 설문조사에서도 멕시코월드컵 우승팀인 브라질이 역대 최고의 팀으로 손꼽혔다. 브라질은 이 대회에서 체코슬로바키아(4-1), 잉글랜드(1-0), 루마니아(3-2), 페루(4-2), 우루과이(3-1), 이탈리아(4-1)를 연파하고 6전 전승으로 우승해 통산 세 번째 줄리메컵을 안았다. 일부는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처녀 출전한 대한민국을 9-0으로 격파하며 1950년대 국제대회 무적의 32연속 무패행진을 달렸던 푸스카스가 이끈 헝가리 팀을 선호하기도 한다. 또 일부는 요한 크루이프가 맹위를 떨치던 ‘토털축구’의 새로운 전형을 유행시켰던 1970년대 네덜란드 팀이나 1998년 프랑스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우승한 지단이 이끌었던 프랑스 팀을 꼽기도 한다.

스페인은 역대 최고의 팀 논란에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성적으로서뿐 아니라 팀 특유의 색깔이 충분히 주목을 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개성이 강한 유럽의 프로팀 선수들로 구성된 스페인 팀 선수들은 자칫하면 오만과 아집으로 모래알이 될 수 있는 팀웍을 긴 호흡과 강한 연대로 결성해, 막강한 전력을 갖출 수 있었다. 걸출한 대형 스트라이커는 없지만 창의적이고, 탄력 넘치며, 인내심이 강한 플레이를 구사하고 수비와 공격에서 특유의 색깔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내던지고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며, 혼란을 수습하고 기회를 창출하는 스페인 팀은 모든 이들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금세기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2002 한‧일 월드컵 준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을 꺾은 바 있는 대한민국 축구팀이 10년 만에 세계 정상의 팀으로 변모한 스페인으로부터 어떤 노하우를 배워야 할지 분명해지는 것 같다. 스트라이커를 앞세우는 것보다는 전체 선수들의 응집력을 활용한 무형의 팀 전력을 갖추는 게 경쟁력의 원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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