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점들이 31일간의 장기 세일에 돌입한 가운데 첫 주말을 맞았다. 일요일인 1일 오후 4시경이지만 유명브랜드를 판매하는 기획전 매장에 고객의 발길이 뜸하기만 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일요일 오후도 ‘한산’, 평일인가 착각할 정도
소비자들, 쉽게 지갑 못 열어… 경제 불황 반영
학원비·경조사비 줄이고 저렴한 PB 상품 선호

[천지일보=김지연 기자] 올해 백화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갑을 꽁꽁 싸맨 듯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풀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부터 롯데, 신세계, 현대 등 백화점 3사는 유례없는 장기 세일에 들어갔다. 이달 29일까지 꼬박 한 달간 계속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름 정기 세일은 보통 17일간 진행했다. 올해 백화점 업계의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기간을 늘린 데는 지난 봄 세일도 영향을 미쳤다. 불황에 이상기온까지 겹치면서 지난 4월 정기세일은 ‘부진’ 속에 막을 내려야만 했다. 당연히 업체들의 재고 부담도 커졌다.

백화점들은 이번 세일을 불쏘시개 삼아 업체들의 재고 소진에 도움을 주고, 고객들의 발길을 붙들어 떨어진 매출을 다소 만회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백화점들은 참여 브랜드를 늘리고 특히 롯데·신세계 2곳은 질 좋은 와인을 70~80%까지 할인하는 와인대전도 마련했다.

하지만 세일 첫날인 29일, 서울 명동 부근 롯데백화점에 들어서자 ‘냉랭한’ 경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세일이라면 사람들로 북적였을 금요일 오후, 백화점은 한산했다.

이우란(여, 59, 서울 용산구 원효로) 씨는 며칠 전에 들렀다가 세일을 않길래 이날 다시 나와서 아들이 신을 양말을 구입한 터였다. 등산복을 구매한 김은주(여, 52,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씨는 “금요일인데 세일기간 치고 사람이 적다”며 본인도 옷이나 가방은 예전보다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사람이 몰린 곳은 유명 액세서리를 50~80% 세일하는 기획전 코너나 3만 원대에도 옷을 고를 수 있는 이벤트홀 정도다.

아이파크백화점은 다른 3사보다 일주일 먼저 세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산하긴 마찬가지. 평일이라고는 하지만 의류매장에 손님들 발길이 뜸했다. 용산점에서 만난 안영순(여, 40, 서울 동작구 상도동) 씨는 “물가가 올라서 소비 자체가 부담스럽다”며 여름옷은 그나마 저렴해서 사지만 충동구매는 안 한다고 했다. 안 씨는 장마 때문에 앞으로 야채값이 더 오를 테니 지출을 쉽게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백화점에서 만난 시민들은 한결같이 고물가에 관한 부담을 털어놓으며 ‘꼭 필요한 것만’ 산다고 말했다. 할인 폭이 커져도 지갑을 쉽게 열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통계도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6일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지수’에서 소비자심리지수(CSI)가 전달보다 4p 떨어졌다고 밝혔다. CSI가 떨어진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기대심리가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체감경기가 그만큼 나빠지고 소비심리도 위축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세일 첫 주말인 지난 1일에 찾은 서울시 중구의 신세계백화점은 고객이 뜸하다 못해 ‘직원이 손님보다 많은’ 형국이었다. 일요일 오후 3~4시경인데도 예상과 달리 각 매장에 손님은 한두 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젊은 층이 좋아하는 빈폴, 타미힐피거 등 유명 브랜드를 30% 할인하는 시즌오프 코너에도 직원 외에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벤트홀의 여성의류 코너는 누구나 알만한 유명브랜드의 상표가 무색할 정도로 고객이 뜸했다.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1인당 구매단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3월에 8만 원이 넘었던 백화점 1인당 구매단가는 5월에 7만 3585원으로 떨어졌다. 두 달 만에 6000원이나 줄어든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경제연구원의 변양규 연구위원은 유럽 경제위기의 장기화로 우리나라 수출과 제조업이 타격을 받고 있는 점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어 소비를 뒤로 미루게 된다”며 특히 사치품이나 내구재 소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올해 경기가 워낙 불황이라서 긴 세일기간이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예년과 달리 7월 중순 이후에도 세일이 계속된다는 점에 기대를 건다는 입장이다.

불황의 그림자는 비단 백화점만의 일이 아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서민들은 아이들 학원비마저 줄이는 실정이다.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신경희(여, 43, 서울 강남 개포동) 씨는 “매매계약이 별로 없어 수입이 줄다 보니 불황을 실감하고 산다”며 마지막엔 애들 학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통계청이 집계한 전국 가구당 월평균 학원비 지출은 지난해 3분기 17만 4000원에서 올 1분기 16만 6000원으로 감소했다.

마트 대상의 영세사업체에서 일하는 정지숙(43) 씨도 자녀 학원 등록을 줄였다. 정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업무상 각종 매장을 드나드는데, 매장마다 규모에 상관없이 예전보다 방문객 수가 줄어든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요즘은 경조사비도 개인적으로 내기 부담스러워 친지끼리, 회사 동료끼리 모아서 봉투 하나에 넣는다”고 어려운 경제상황을 대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형마트 및 편의점에서는 저가형 PB 상품 매출이 급증 추세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올해 1~6월까지 매출에서 기존 제품보다 PB 상품의 매출 신장세가 두드러졌다. 500원짜리 PB 생수(500㎖)는 매출이 2배나 뛰었고, 저렴한 얼음컵 아이스커피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기가 계속되며 매출이 전년대비 89.3% 상승했다. 비싼 외식비 부담에 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하는 사람이 늘면서 도시락 매출은 전년대비 106.4%, 컵라면은 24.1% 증가한 상태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고유가로 대중교통 이용이 늘면서 교통카드 충전 매출은 49.7% 증가했고, 통신사 제휴카드를 이용해 할인을 받는 고객도 81.6% 늘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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