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캄보디아 오지마을에서 1:1 고아돕기가 진행된 가운데 박석순 이사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아이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재난구호 제공)
한국재난구호 박석순 운영이사 (금왕기업 대표이사)

CEO 활동 바쁘지만 틈틈이 해외봉사까지
“재능기부로 저개발 국가 도움주고 싶어”


[천지일보=이솜 기자] “저에게는 봉사활동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봉사하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가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노력하는 사람에게 봉사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외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가게 될 저개발 국가에 필요한 봉사도 ‘고기’ 그 자체가 아니라 ‘고기를 잡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재난구호 박석순(46) 운영이사는 기계설비, 수리, 냉동설비, 건설 전반을 다루는 금왕기업의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전남 무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부터 지게를 지기 시작한 그는 가난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았다.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교육의 기회마저 상실한 박 이사는 ‘교육’과 ‘자본’에 한이 맺혀 오로지 이를 위해서만 달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누가 봐도 ‘자수성가’를 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업에 성공했다.

그랬던 박 이사가 봉사에 눈을 돌린 계기는 뜻밖의 좌절 때문이었다. 가정 문제가 터지자 지금껏 일궈왔던 사업마저 파산했다. 그는 “그때 사업 실패는 내가 새로운 생명을 얻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10년 동안 한 달을 못 쉴 정도로 일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들이 없었더라면 분명 병에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로 양로원이나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한국재난구호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 그를 봉사활동의 세계로 완전히 이끌게 된 사건이 2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한국재난구호 조성래 이사장과의 만남이다.

그는 조 이사장의 집에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전 재산을 바쳐 봉사를 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의 집은 정말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박 이사는 조 이사장에게 “불우이웃은 여기 있었네요”라고까지 말했단다. 가진 게 많으면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박 이사는 ‘이 정도의 성품이면 내가 함께도 배울 것이 많겠구나’라며 한국재난구호에 발을 들이기로 결정했다.

이후로도 재난 현장뿐 아니라 여러 가지 활동을 하던 중 그는 봉사활동에 점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료급식소에서 정작 봉사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닌 부자들이 와서 봉사자들을 조롱하고 행패를 부리는 등 만행을 저질러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것.

박 이사는 “가진 사람들이 베풀지 않고 계속 움켜쥐려는 모습에 신물이 났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듯 서서히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했을 때쯤 한국재난구호에서 캄보디아를 가게 됐다. 그를 자원봉사의 매력으로 빠지게 만든 두 번째 사건이다.

캄보디아에 간 그는 처음에 ‘충격’ 그 자체였다. 도저히 사람의 삶이라고 믿을 수 없는 생활환경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순수했다. 물건 하나만 줘도 굉장한 감사를 표현했다.

사탕을 나눠줄 때 아이들은 자신의 것만 받으면 그 이후로는 받지 않았다. 자신은 받았으니 다른 친구들에게 주라는 것이다. 화폐가치도 달랐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썼던 돈이 이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치가 있었다.

캄보디아에 다녀온 후 그의 마음은 변해있었다. 박 이사는 “그전까지는 내 것을 주면서 행복하다는 것을 실제로 느끼지는 못했다”며 “내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단순한 뿌듯함과 만족감이었다. 그러나 캄보디아 봉사활동 이후 나는 조 이사장님이 왜 그렇게 퍼주는지, 사람들이 봉사에 미치는지 깨달았다. 내 것을 나누면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그는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박 이사는 “물자 구호도 물론 필요하지만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시급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한 마을의 학교에서는 이전에 설치했던 펌프가 고장나 씻지 못하고 있었다. 펌프를 고치는 요령은 굉장히 간단한데 현지인들은 이를 모르니 그대로 방치해뒀다. 전문가에게 부탁해 이 펌프를 고치는 비용은 이 학교 교장의 월급과 같은 액수인 약 5만 원이다. 펌프를 고치라고 돈만 전달하면 빼돌린다는 사실을 아는 박 이사는 공개적으로 교장에게 5만 원을 주며 “내일 아침까지 펌프가 완벽하게 고쳐져야 한다”고 약속을 받아냈다.

이것이 박 이사가 추구하는 봉사 방식이다. 봉사 받는 사람도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캄보디아를 떠날 때 박 이사는 “펌프도 설치하고 여러 가지 구호물자도 전달했으니 다음에 왔을 때는 좀 더 청결하게 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캄보디아에 다녀온 후 그는 행복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박 이사는 “예전에는 많이 소유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행복은 내 마음속에 있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 마음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욕심이 생기면 그 사람은 불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그는 다른 부모들과 다르게 자녀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박 이사는 다만 ‘바르게 사는 법’을 자신의 삶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다. 아버지의 가치관을 보고 자란 남매는 아버지가 “재산은 모두 사회에 기증할 것”이라고 선언해도 “아빠다운 생각이다. 존중한다”라는 쿨(?)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조금은 특이한 원칙을 고수하며 봉사로, 한 기업의 CEO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자원봉사활동의 꿈이 더 남아있는 듯했다.

“고등학생인 자녀들이 좀 더 성장하면 한국재난구호에 완전히 몸담고 싶습니다. 재난이 있는 어느 곳이나 달려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집을 고치고, 전기를 설립하고 등 모두 내 재능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더불어 저개발 국가에 가서 나의 재능을 나누고 사람들을 양성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저도 나누는 행복을 느끼고, 봉사를 받는 사람들도 좀 더 발전해 나중에는 봉사하는 쪽으로 변하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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