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처럼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가정의 불화로 이어지곤 한다. 특히 빈도가 잦거나 강도가 센 부부싸움은 자녀에게 정신적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먼저 아이는 부모의 높고 신경질적이며 적대감이 담긴 톤의 목소리를 들으며 ‘불안’ 또는 ‘공포’의 반응을 보인다. 자율신경계, 특히 교감신경계가 항진되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땀을 흘리게 되며, 근육은 긴장된다. 물론 싸움을 하고 있는 부모들 역시 이와 같은 신체 생리적 반응을 보이면서 싸우고 있을 것이다. 이를 지켜보거나 듣고 있는 자녀들에게도 유사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공포 영화를 봤을 때의 반응을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만일 부부싸움이 반복되어 장기간 지속되면, 아이는 부모의 큰 목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반응을 보인다. 실제 싸움이 아니어도 싸울 때 들었던 큰 목소리와 그냥 듣는 큰 목소리 간에 구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과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다. 나중에는 TV에서 큰 소리만 나와도 혹은 싸우는 장면만 나와도 아이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 단계에서 머무르는 아이들도 있고,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아이들도 있다. 후자의 경우 아이는 나름대로 ‘불안’을 극복하고자 부모님의 일에 무관심해지기 시작한다. 가능하면 부모님을 보지 않으려고 하고, 듣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부모가 함께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을 회피하는 것이다. 아이는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고 ‘머리’로만 생각하려고 한다. 즉, 정서적(감정적) 발달을 멈추고 인지적 발달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긍정적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부정적 감정을 주로 경험하게 되니까 자구책으로써 아예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결과다. 아이는 정서적으로 메마른 무감정 상태의 성인으로 성장한다. 아이가 짜증이 늘고 폭력성을 보이는 경우도 무척 많다. 이 경우는 부모의 폭력적인 싸움을 그대로 모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는 폭력적인 부부싸움을 중단해서 아이에게 나쁜 본보기를 보이는 것을 멈춰야 한다. 또는 부모의 불화가 장기간 지속되면 소아 우울증이 생기기 쉬운데, 소아 우울증의 증상으로도 짜증과 공격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때는 아이에게 속상한 마음 또는 화난 마음을 말로 표현하게끔 유도하고, 놀이나 음악, 미술 활동을 통해서 공격성을 분출시킨다. 또래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자주 보이는 아이의 경우 소아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요한다.

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을 할 때 아이에게 어떤 행동을 해줘야 할까? 먼저 아이로 하여금 다른 곳으로 피하게끔 하라. 그리고 싸움을 멈추어라. 아이를 위해서 싸움을 뒤로 미루는 셈이다. 그러고 나서는 감정적 흥분을 가라 앉혀라. 그런 다음에 아이에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아빠와 엄마가 서로 생각이 달라서 얘기하다가 싸움으로 번졌다고 얘기하라. 그리고 싸우고 난 다음에는 다시 화해할 것임을 말해 주어서 아이를 안심시킨다. 싸우게 된 이유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아이의 연령 정도에 따라서 어느 정도는 명확한 이유를 대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아이가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취학 전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즉 4~7세 정도의 아이들은 간혹 자신이 지난번에 잘못한 일을 가지고 부모가 싸우기 때문에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부부싸움이 끝난 후 아이가 주눅이 들어 부모의 눈치를 본다면, 아이한테는 예전처럼 따뜻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부모님이 화가 나서 싸운 모습이 아이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에게도 화를 내거나 비난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측을 할 수 있다. 비록 엄마와 아빠가 다투었다고 할지라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음을 말로 설명해 준다. 그리고 아이를 안아줘서 아이를 안심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부가 서로 다투기 전 항상 자녀의 존재를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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