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 학예연구사

소외된 문화재가 있다. 지정받지 못한 문화재, 바로 비지정문화재다. 문화재보호법에서 명시하는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국가적․민족적 유산임에도 이들은 보존대상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를 문화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보존가치’와 문화재 관리체계상의 ‘지정가치’ 간의 불일치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이것들은 우리가 잘 지켜 후손에 물려주어야 할 ‘보존가치’는 충분히 지니고 있지만, 국가나 지자체에서 선별하여 법적으로 보존․관리해야 할 만한 ‘지정가치’는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 문화재 보존관리 제도가 보존가치보다는 지정가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현재 우리의 문화재 보존관리제도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들을 보존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치나 아리랑이 아닐까 한다. 이것들은 가장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는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이지만 법적 측면에서 지정에 필요한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임명하기 어려워서 유형문화재의 ‘보존가치’에 해당하는 ‘전승가치’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지정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보존가치보다는 지정가치를 우선시 하는 데에는 아마도 지금까지 국가가 나서서 문화재 보존관리를 주도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 특유의 역사적․사회적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문화재 보존관리는 보존가치를 지닌 문화재를 포괄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우리 세대에서 잃어버리지 않고 최대한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대안은 지정문화재의 범위를 넓혀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최대한 지정하여 관리할 수 있도록 법적․행정적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현재 문화재청이 무형문화재의 법적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보존가치와 지정가치 간의 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최대한 지정할 수 있도록 지정기준이 포괄적이고, 이를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대신 지정되었다고 해서 보존․관리비용을 국가나 지자체에서 모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금운용을 통해 선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정문화재의 보존․관리에 관한 결정은 국가나 지자체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외국사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도 보존가치를 최대한 지정가치로 담아낼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 수준의 다양한 지정제도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대안은 법적인 지정제도 개편과 함께,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존․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각급 지자체별로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종합적 조사를 통해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이와 함께 문화재를 보존․관리하는 데 있어서 정부와 민간단체가 역할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즉, 지정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에 대해서는 국가와 지자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보존가치가 있는 비지정 문화재에 대해서는 종교단체, 시민단체, 마을보존회 등 민간단체가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문화유산국민신탁,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등 다양한 형태의 민간단체가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범위를 넓혀가는 점을 감안할 때, 민간단체를 보존․관리에 참여시키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성당이나 사찰과 같은 종교문화재나 전통마을과 같은 면 단위의 전체성을 보존하는 데에 효과적인 방식일 것이다.

종단 또는 마을 공동체 차원에서 보존․복원 공사를 결정하는 자율적인 심의기구를 설치하여 보존․복원 사업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든지, 지자체별로 목록화한 비지정문화재를 대상으로 지역주민이나 시민단체들이 자체적인 보존운동을 펼친다든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문화재 보존관리 방식도 사회적 변화와 요구에 맞추어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선택적으로 골라서 문화재를 보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 문화의 구석구석을 담아내고 있는 다양한 문화재를 다음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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