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새누리당이 현행 당헌·당규대로 오는 8월 20일 전당대회를 열어 대선 후보를 선출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물론 작은 타협의 여지는 뒀다. 현행 당헌·당규의 변경이 없을 경우라고 토를 달았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당헌·당규의 변경이 있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김영우 대변인도 “당헌·당규를 바꾸는 문제에 대해서는 당 지도부와 대선 예비주자들 간의 논의 가능성을 열어 두겠다는 의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리하면 대선후보 등록 이전까지는 경선 룰 논의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참으로 궁색하지만 경선 룰 논의를 종결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으로 보인다. 가능성이 커 보이진 않지만 어쩌면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새로운 스토리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신공주, 그러나 반전은 남아 있다

요즘 새누리당 박근혜를 향해 여기저기서 쓴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오만하다는 지적에서부터 불통에 먹통까지, 심지어 유신공주라는 직격탄까지 나오고 있다. 대선정국이 되면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를 향해 쓴소리가 쏟아지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별 문제가 아니다. 그 또한 검증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경선 룰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공방전은 단순히 검증의 차원에서만 볼 일이 아니다. 박근혜의 가장 약한 고리를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검증보다 정치력을 보는 일종의 시금석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경선 룰 문제의 핵심은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넘어 이런 논의를 풀어가는 ‘박근혜의 정치 역량’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원칙대로만 한다면 박근혜는 선수가 룰을 바꾸느냐고 말한 뒤, 그대로 침묵해도 말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스포츠 게임이 아니다. 서로 합의만 되면 얼마든지 게임의 룰이 아니라 당헌·당규도 바꿀 수 있다.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만드는 ‘정치영역’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원칙을 지키겠다는 박근혜의 모습은 일단 보기가 좋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원칙만 말하는 고집불통,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먹통, 그리고 누가 죽든 말든 나대로 하겠다는 식의 오만한 태도가 공존하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 주변에는 항상 유신독재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그 암울했던 군사독재 정권 시절을 생각게 하는 철권통치의 잔영이다. 유신공주는 그 압축된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가 빨리 지워야 할 상처요, 빨리 뛰어넘어야 할 한계이다. 박근혜에게 미래의 새로운 리더십이 아니라 과거 유신정권의 잔영이 어른거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2040세대와 어떻게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마의 2% 벽을 넘기 어렵다. 그게 정치현실이다.

그러나 아직 대반전의 기회는 남아 있다. 박근혜에게는 원칙도 중요하지만 정몽준·이재오·김문수 등 이른바 비박주자 3인의 존재도 중요하다. 박근혜가 대선 본선에서 그 2% 벽을 넘는 데는 비박주자의 도움이 절실하다. 비박주자들의 지지표도 크지만, 그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타협과 포용의 리더십,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을 던져 먼저 당을 구하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2040세대의 무당파 중간층은 원칙만 말하는 박근혜보다 원칙을 지키되 위기 때는 자신을 던지는 박근혜 모습을 더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렇게 유연하고 탄력적인 것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박근혜에게 이런 가능성의 예술, 타협안이 나오는 대반전을 기대할 순 없을까. 박근혜 주연의 ‘짠한 스토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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