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20년 전 이맘때 어느 일간지에 강남 학생들이 주말에 팀을 이뤄 체육 과외를 받는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형편이 상대적으로 나은 이 지역 학부모들이 극성스럽게 체육 과외까지 시킨다는 비난조였다. 요즘도 주말이면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이 동네 공터나 공원 등에 모여 축구나 야구, 농구, 배구 같은 체육활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체육활동 과외를 위한 전문 업체들이 강사들을 고용해 학생들을 지도하게 하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먼지 폴폴 날리는 공원이나 공터에서 아이들이 북적거리며 뭔가를 한다고 하지만 시원찮다.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고 장소도 좁다 보니 정식 게임은 엄두도 못 내고 패스나 토스 같은 기본 동작을 반복하거나 줄넘기 등 기초 체력 다지는 운동만 하다 만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이 돈을 들여 체육 과외를 시키는 것은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체육활동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체육 특기생으로 진학시키려는 것도 아니고 기초체력이라도 길러 줘야 나중에 힘이 없어 공부 못하겠다는 소리를 안 듣는 것은 물론 체육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겠다는 의도다.

그나마 체육과외라도 시킬 만큼 형편이 된다면 모를까, 가뜩이나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등골이 휘는 집안에서는 체육 과외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죽기 살기로 돈 벌어봤자 아이들 학원비 대기도 빠듯한 형편에 체육 과외는 언감생심이다. 학교에서 알아서 체육활동을 잘 시켜주면 아이들도 좋고 부모들도 좋으련만, 학교는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절로 한숨이 나온다.

학비가 비싼 사립초등학교에선 예체능 교육이 잘 이뤄진다. 체육과외다 피아노 학원이다 해서 따로 돈을 들이지 않아도 학교에서 다 알아서 시켜주니 서로 들어가려고 번호표 받아 대기하는 것이다. 공립학교 아이들도 따로 피아노 학원 안 다니고 태권도 도장 안 다녀도 될 정도로 학교 안에서 그런 것들이 다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학교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체육시간이라고 해서 축구공을 뻥뻥 차며 신나게 놀 수 있는 게 아니다. 체육 시간은 물론 학교 운동장에서는 아예 축구나 야구를 할 수 없도록 하기도 한다. 여학생들도 그렇지만 몸이 근질거리는 남자 아이들은 더 죽을 맛이다. 할 수 없이 남자 아이들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공기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가축도 가둬 기르면 몸에 독성이 생기고 그것을 먹은 사람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보양식인 푸아그라는 살진 거위의 간으로 만드는 것인데, 크고 기름진 간을 얻기 위해 좁은 공간에 가둬 꼼짝 못하게 하면서 튜브를 목구멍에 쑤셔 박고 강제로 먹이를 먹게 한다. 이 때문에 동물 보호론자들이 동물학대라며 푸아그라를 먹지 말자고 항의를 하고 프랑스에서도 법으로 푸아그라에 관한 법을 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푸아그라를 위해 사육되는 거위나 소, 돼지, 닭 같은 가축들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 교육 환경도 솔직히 말하면 거의 사육 수준이다. 아이들에게 제일 큰 고통은 꼼짝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게 하니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거나 우울증을 앓고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자살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서울을 디자인한다며 몇 백억 원을 들여 광화문광장을 희한하게 만들어 놓거나 몇 천억 원을 들여 억지 춘향격의 뱃길을 만들지 말고, 아이들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이나 체육관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수십조 원을 들인 4대강 사업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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