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식 시인

불교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고 좋은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불교의 부정적인 면이 수시로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제대로 알 건 알아야 한다. 좀 더 밝은 눈으로 바라보면 불교에는 긍정적인 면이 참 많다. 이 사회를 살면서 부정적인 면만 보려고 하면 끝이 없고 긍정적인 면만 보려 하면 눈이 멀어 다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불교의 긍정적인 면 하나만 살펴보자면 그것은 사회복지다.

21세기는 고도의 과학 문명이 지배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대형 참사가 자주 일어난다.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와 태풍, 화재로 인한 참화, 지하철 사고, 교통사고를 비롯한 각종 사고 등으로 인해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어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이웃들은 슬픔의 고통을 가누지 못한다. 또한 많은 이들이 가정문제, 직장문제, 사회문제 등으로 방황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우리는 자의(自意)에 의해서든 타의(他意)에 의해서든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괴로움이란 발생 이유가 어떻든 간에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피해를 주며 내부에 축적되면 두고두고 고치기 어려운 마음의 병(病)까지 얻게 된다.

오늘날에는 천재지변에 의한 물적인 괴로움은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지만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마음의 괴로움, 즉 행동과 언어, 그리고 생각으로 지어 받은 괴로움은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국가든 사회단체든 개인이든 괴로움의 소멸을 덜어주는 행위나 그 과정을 곧 사회복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회복지라 할 때 종교적인 사회 복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 종교 사상 속에 사회복지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이자 보살행 실천의 종교다. 중생들의 괴로움이나 슬픔, 고민을 덜어주고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일은 자비의 실천이다.

그러기에 불교 자체가 사회복지일 수도 있다. 따라서 복의 밭을 갈고, 복된 씨앗을 심었으며, 복 받을 삶을 사는 것이 곧 바로 사회복지다. 개인이 지어 생기는 복이 모여 공복(共福)이 되므로 작은 한 개인의 복이나 보시도 결국 사회를 밝혀가고 모든 중생의 행복한 삶을 여는 사회복지의 역할을 한다.

‘중아함경 세간복경’에는 부처님께서 일곱 가지 복을 짓는 것이 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복을 짓는 일곱 가지란 집이 없는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고 집안에서 쓸 수 있는 세간을 나누어주며 헐벗고 가난한 사람에게 따스한 옷을 주고 굶주려 배고픈 자에게는 밥을 주어야 하며 비바람에 몹시 시달리면 먼저 나아가 그들을 구제해 주며 모진 병고에 시달리면 약을 주어 치료하고 밤낮으로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수행 실천하며 말과 얼굴을 부드럽게 하고 복을 짓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수미산만큼 복을 짓고 또한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불교 사회복지다.

복은 스스로 짓고 받는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부드러운 얼굴과 말씨 그리고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면 이것이야말로 사회복지다. 또한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돌본다면 이야말로 사회복지 사업에 참여하는 일이다. 사회복지란 꿈과 희망을 주고 건강한 삶과 건강한 사회인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제덕복전경’에서 “곡식과 과일 나무를 심어 나누어 주고 약을 주어 병든 사람을 치료하여 주고 마차나 배를 만들어 사람들을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해주며 다리를 놓고 집을 지어주며 우물을 파서 목마른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화장실을 만들어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을 하면 하늘에 태어나는 복을 받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따라서 자비심으로 일체 중생의 괴로움을 함께 나누는 대자대비의 사상이 바로 불교사회복지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부처님의 마음이다. 불교적 사회복지는 연기적인 입장에서 보면 모든 중생에 대한 은혜의 보답으로 인간이면 꼭 해야 할 무주상보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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