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근세사에 이렇게 긴 전쟁은 없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촉발된 한국 전쟁은 반세기 넘게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에 대한 포격 도발이 말해주는 것처럼 북한의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드디어는 핵개발과 핵무장을 시도함으로써 한국과 세계에 큰 위협을 던져주기에 이르렀다.

근세 전쟁인 2차 대전 후 열전과 냉전을 치른 나라들 중에서 과거의 적대감정에서 벗어나 화해와 협력, 상생의 길에 나서지 않은 나라가 없다. 미국과 일본, 미국과 독일, 독일과 유럽, 독일과 소련, 미국과 중국이 그러하며 냉전을 주도한 미국과 소련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끝내 철천지원수로 남을 것 같았던 베트남 전쟁의 당사국 미국과 베트남까지도 구원(舊怨)을 청산하고 화해의 손을 잡았으며 남중국해에 세력을 뻗쳐오는 중국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구상에서 오직 한 곳, 한반도만은 예외다.

아직도 남북한은 전쟁 중이다. 간헐적인 무력 충돌이 이어진다. 무력도발이 인민들에게 일으켜 놓는 충격과 공포감, 한국의 동맹인 미국과 남한에 대한 끊임없는 적대감의 확대재생산이 저들에게는 인민을 다스리고 체제를 유지하는 유효한 수단이 되기 때문에 전쟁은 끝나지 않는 것이다. 피차 치열한 체제 경쟁을 치러낸 현재에 이르러 남과 북은 빛과 어둠, 천당과 지옥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하게 대비된다. 더 말할 것 없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열린사회로 국제 질서의 당당한 일원이며 국제 질서의 메인스트림(Mainstream)에 편입돼 있다. 이에 비해 북은 유일무이한 왕따의 1인 절대왕정 폐쇄 사회다.

저들은 인민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권 권력 엘리트 계급인 자신들이 살기 위해 국제 사회의 밝은 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는 어둠의 체제로 사회를 끌고 가지 않을 수 없다. 남한을 비롯한 밝은 개방사회의 빛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간단없이 되풀이하는 무력 도발일 것이다.

빛과 어둠의 만남은 곧 어둠의 실종을 가져온다. 말하자면 밝은 세계를 향한 저들의 개방이나 밝은 세계가 저들에게 다가오는 역(逆)개방은 바로 저들의 어두움, 어두운 체제의 끝장을 의미한다. 이를 잘 알고 있을 북의 권력 엘리트들이 인민들은 더 나은 세계에서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자신들에게는 죽음을 초래할 개방 조치를 과감하게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역시나 마찬가지의 문제가 걱정이 되어 설사 개방 사회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해도 달가울 수만은 없으며 쭈뼛거려질 것이 분명하다.

북한이 처한 이 같은 딜레마가 한반도를 지구상의 유일한 적대적 국토 분단지대, 분쟁지대, 냉전지대, 북한을 세계의 골칫거리로 남겨 놓게 한 본질적인 요인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저들만의 딜레마가 아니며 저들을 동족으로서 품에 안아야 할 한국의 딜레마이고 동시에 저들의 도발을 멈추게 함으로써 동북아와 세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기를 원하는 주변국들과 세계 모든 나라의 딜레마일 것이다.

하지만 저들의 살길이 무력도발이나 전쟁에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저들도 아마 그 정도의 계산은 하고 있을 듯하다. 지금의 저들 처지로 보면 저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것 같아 보인다. 핵폭탄이 저들을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는 파탄 나고 인민은 먹고 살 양식이 없으며 국경을 탈출하는 탈북자의 엑서더스(Exodus)가 그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저들의 명줄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그렇기에 이판사판 일을 저지를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남쪽을 향해 전쟁을 벌이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무덤을 파는 일이라는 것을 모를 저들도 아니다. 국제정세로 보아 과거 6.25 때의 소련이나 중국과 같이 그들의 전쟁을 지원해줄 주변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더욱 중요한 것은 남한이 그때와 같이 호락호락 당할 만큼 절대로 허약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한미 동맹까지를 들먹일 것도 없이 남한을 잘못 건드리면 남한에도 큰 피해를 입힐진 모르지만 저들은 바로 패망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의심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저들은 입만 열면 허풍을 떤다, 하지만 그들 자신도 은근히 겁을 먹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저들은 혹여 6.25 때처럼 전쟁으로 남한을 먹어치우겠다는 망상이나 무력도발을 계속해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을 때도 되었다. 북한의 유일한 맹방이며 지원 세력인 중국마저도 언제까지라도 변함없이 저들의 생명줄이 되어줄 수는 없다.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해 책임 있는 세계 질서의 성원으로 역할이 증대되는 한(限) 중국이 국제적으로 문제아이며 왕따인 북한을 끝까지 감싸고 비호하기는 점점 더 부담스러워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북한에게 유일하게 생존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은 동족인 남한과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 평화 공존을 해나가는 길뿐이다. 그 과정을 통해 신뢰를 쌓아 평화통일로 나아감으로써 상생의 길을 찾고 민족 번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도 때가 있다.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아주 늦은 것은 아니다. 매년 민족의 비극을 되새기게 하는 6.25 전쟁의 날은 지금이라도 북이 그같이 해줄 것을 촉구하는 특별한 날이 돼야 한다. 남쪽 스스로도 남북이 화해하고 민족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길을 찾아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전향적이고 발전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날의 슬픔과 원한을 강조해 상처만을 덧내거나 복수심만을 키울 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평화라는 것은 공짜로 얻어지지는 않으므로 역시 이날은 평화를 위해 평소에 철저히 전쟁에 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과 전쟁을 잊으면 위기가 온다는 망전필위(忘戰必危)의 생각을 새삼 국민들이 마음속에 되새기는 날이 돼야 한다. 안보를 굳건히 하고 군사력을 기르는 것은 꼭 전쟁에만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미리 전쟁을 억지해 평화를 지켜내기 위함이다. 안보와 유비무환의 군사력의 확충에 비용이 얼마가 들든 자칫 안보를 소홀히 함으로써 입게 될 전화(戰禍)의 파멸적인 피해에 비하면 결코 비싼 대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평화는 첨단 무기로만 지켜내는 것은 아니다. 안보에 관한 한 국민의 단합과 합의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도 이날 꼭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북 주사파와 같은 이적(利敵)의 분열적인 사고가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한반도에서 길게 계속되는 전쟁을 깨끗하고 짧게 마무리 짓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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