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친구라고 찾아 간 소진에게 모욕을 당한 장의는 조나라를 때려 부수기 위해 진나라로 향했다. 그가 진나라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여비는 소진이 몰래 보낸 식객이 부담을 해 주고 있었다. 심지어 소진이 진나라의 중신들과 교제를 나누는 비용까지도 아낌없이 후원해 주었다. 장의는 소진의 그 계책을 알 수가 없었다. 마침내 장의는 소원한 대로 진나라 혜왕(惠王)을 만나는 데 성공을 했다. 혜왕은 장의의 건의에 감동되어 그를 고문 자리에 앉혔다. 그런 다음 장의를 제후들을 공략하는 계획을 세우는 데 참여하도록 했다.
소진이 보낸 식객은 여기까지 확인하자 장의에게 길을 떠나겠다고 했다.

그때 장의는 정중하게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오늘날이 있게 한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의 덕택에 내가 잘 되었으니 이제부터 그 은혜에 보답하려 하는데 왜 떠나려고 하십니까?”

“저는 소진 어른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당신의 인물됨을 미리 안 것은 소진 어른이었습니다. 소진 어른은 진나라의 공격으로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합종이 깨지지 않을까 무척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지명하고 또 당신이 분개할 수 있도록 일부러 모욕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을 분발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뒤 저에게 뒤따라가서 당신의 편의를 보살피게 한 것도 소진 어른의 뜻이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진나라에 등용되었으니 저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저는 돌아가서 일의 전말을 그 어른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장의는 할 말이 없었다.

“음, 일이 그렇게 되었던가. 소진의 큰뜻에 항복할 수밖에 없군. 그러나 내가 등용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풋내기로서 조나라에 대한 일을 꾸밀 수 있을 정도의 입장은 되지 못하오. 소진에게 전하시오. 내가 할 수 있는 한 조나라를 치기 위한 계책은 세우지 않을 것이며 또 소진이 있는 한 내가 나설 곳은 없다고 말이오.”
얼마 가지 않아 장의는 실력을 인정받아 고문에서 곧 바로 재상으로 등용되었다. 그는 옛날의 원한이 있는 초나라 재상에게 자신의 뜻을 담은 도전장을 보낸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예전에 그대의 식객으로 연회에 초대되었을 때 그대는 나에게 구슬을 훔쳤다는 누명을 씌워 고문을 했다. 그 보답으로 이번에는 그대의 성을 훔치려 한다. 그대는 수비를 튼튼히 하여 나라를 지켜라.”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 때 제나라는 초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었다. 장의는 우선 제나라와 초나라를 이간시키기 위해 초나라로 갔다. 초나라 회왕(懷王)은 장의가 방문하자 화려한 숙소를 준비하고 그곳으로 직접 찾아왔다. “우리나라는 외지고 먼 땅인데 일부러 찾아와 주신 것은 무슨 좋은 책략이라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왕께서 저를 믿어 주신다면 제나라와 당장 국교를 끊으십시오. 그러면 진나라는 상과 어의 땅과 사방 육백 리를 드리고 또 진나라 공주를 대왕의 측실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초나라도 진나라에 공주를 보내면 우리 두 나라는 형제의 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그리되면 결국 초나라는 서쪽의 강국인 진나라에 은혜를 팔고 동시에 북쪽의 강국인 제나라로부터의 위협을 없애는 일이므로 초나라로서는 그 이상의 묘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초나라 회왕은 귀가 솔깃했다. 신하들도 모두 왕의 결단에 찬성했다. 그때 반대하는 사람 하나가 있었다. 장의의 정적인 진진(陳軫-본래 진나라에서 일한 책사로 장의와 왕의 신임을 다투다가 초나라로 옮겨 갔다.)이었다. 초나라 왕은 화가 나서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도 사방 육백 리의 영토를 얻는 것이오. 신하들이 모두 기뻐하는데 그대만이 반대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선가?” 진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상과 어의 땅이 우리 손에 들어 올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나라와 국교를 끊으면 제나라와 진나라의 연합이 성립되기 쉽습니다. 그렇게 제나라와 진나라의 연합이 되면 초나라는 마침내 궁지에 빠지고 맙니다.” 회왕이 다시 까닭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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