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윤재선 수화해설사 인터뷰

▲ 국립중앙박물관 윤재선 수화해설사가 수화로 ‘사랑해요’라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최유라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문화재에 담긴 의미도 꼼꼼하게 알려주는 ‘황금손’
“박물관도 한류다” 외국 농아인 입소문 타고 인기

[천지일보=최유라 기자] 어느 박물관에 가더라도 관람을 도와주는 가이드 해설사가 있다. 외국인이 방문했을 땐 통역사가 동행하고, 급할 땐 세계 공용어인 영어통역사가 배치된다. 하지만 특별히 ‘이들’에게 만큼은 다른 가이드 해설사가 필요하다. 바로 청각에 장애가 있어 듣지 못하는 자, 즉 ‘농아인’을 위한 수화해설사다.

지난 14일 능숙하게 수화로 농아인을 가이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윤재선(30) 수화해설사를 만났다.

윤 수화해설사는 가족과 같은 심정으로 농아인의 답답한 심정을 구구절절 꺼내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수화해설사의 중요성이 절로 실감케 됐다. 국내 27만 명이 농아인이라는 수치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종이에 글을 써서 대화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를 향해 윤 수화해설사는 이렇게 말했다.

“농아인의 언어는 ‘수어(수화)’예요. 수화로 대화할 수 없다면 아무리 수많은 해설사가 있다하더라도 농아인에겐 그저 벽을 보고 외치는 메아리일 뿐이죠. 글로 쓰더라도 물리적‧시간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등 어려움이 많아요.”

특히 농아인은 수화를 할 때 억양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억양 대신 표정이나 눈빛을 이용해 대화한다. 이러한 섬세한 표정까지 놓치지 말아야 비로소 이들의 말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농아인에게 수화해설사는 절실하다. 또한 박물관 문화재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기에 ‘이들’에게 있어서 수화해설사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재다.

‘신라금관의 모양은 사슴뿔입니다. 사슴뿔은 잘라도 계속 자란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슴뿔을 본뜬 신라금관은 영생을 상징합니다.’

윤 수화해설사는 얼마 전 농아인에게 수화로 신라금관의 의미를 설명했던 모습을 다시 재현해줬다. 농아인에게 유물에 담긴 뜻과 의미를 하나라도 더 설명해주고 싶은 것이 소망이라는 윤 수화해설사.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박물관 수화해설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윤 수화해설사는 굳이 수화를 배워야 할 필요가 없는 평범한 집안의 일반인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농아인의 마음을 이렇게 잘 헤아려 줄 수 있을까.

“중학생 때 옆집에 살던 이웃 할머니가 귀가 들리지 않았어요. 짓궂은 동네아이들은 매일같이 할머니를 ‘멍할머니’ ‘귀머거리 할머니’라고 놀려댔죠. 그 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할머니가 너무도 안타까웠어요.”

작은 계기였지만 따뜻한 마음이 그의 인생에 큰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농아인의 가슴앓이를 자신의 아픔으로 품었던 그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TV에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라는 광고를 통해 처음으로 수화를 접했다.

기쁨에 겨운 윤 씨는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수화책을 사서 독학에 매진했다.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수화는 여러 곳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아 많은 요청이 들어왔으며, 결국 탄탄히 다져진 수화실력은 그를 국립중앙박물관 수화해설사 자리까지 올려놨다.

“최근엔 입소문이 나서 많은 해외 농아인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방문하길 원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 박물관도 농아인을 위해 배려를 한다곤 하지만 그냥 안내문을 건네주거나 스크린에 써져 있는 글이 움직이는 정도가 대다수예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달 국내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태평양지역 농아인대회에 참석한 농아인 선수단 및 참가자들을 박물관으로 초청해 전시물 소개 및 한국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수화로 제공한 바 있다.

그날도 윤 수화해설사는 박물관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이들을 초청했었다. 하지만 식비조차 없어 밥을 굶고 있는 외국인 농아인을 안타깝게 바라본 그는 프로그램을 주최한 국립중앙박물관 고객지원팀과 함께 어렵게 자금을 구해 식사를 대접해줬다고 했다. 외국인 농아인이 타국에 와서 아무런 대가 없이 엄청난 환대를 받은 셈이다.

또 윤 수화해설사는 수화로 관람을 다 마치는 시간이 가장 뿌듯했다고 했다. 국내 농아인은 우리나라 역사에 새로운 눈을 떴음에 감사함을 표했고, 외국인 농아인은 친절한 안내에 고마움의 표시로 가만히 안아주거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고 회상했다.

수화해설사가 전해준 진심어린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은 이미 세계 농아인에게 감동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관심을 키우는 데 있어 윤 수화해설사의 조용한 손짓은 신(新) 한류문화를 낳는 반짝이는 ‘황금손’이었다.

농아인이 가지고 있는 고충을 함께 이해하길 원한 윤 수화해설사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큰 바람을 전했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했어요. 이 세 가지 장애 중에서 하나만 고칠 수 있다면 청각을 찾고 싶다고 했죠. 그만큼 듣지 못한다는 건 이 세상과의 소통에서 단절된다는 거예요. 농아인에게 세상을 소통하도록 돕는 수화해설사 양성기관이 이번 기회에 많이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2명의 수화해설사가 있으며, 최근 농아인 수화해설사 1명을 고용했다.

또한 작년 ‘도가니 사건’ 이후로 장애인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올해 ‘장애인의 날’에는 수화로 전시물을 해설해 주는 ‘손으로 말해요’ 아이폰용 앱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고, 농아인협회 및 국·공·사립 농학교 유관단체와 공동으로 ‘농아인 가정 초청 엄마와 함께 열려라 박물관’ ‘농아인 수화해설사 대상 강좌’ 등을 진행하는 등 장애인을 배려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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