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생들이 서울 신촌역 안을 걸어가면서 짧은 길이가 신경 쓰이는 듯 손으로 치마를 계속 끌어내리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승연, 김일녀, 김지연, 박수란 기자] 서울 중구의 K 여자상업고등학교. 하교 중인 학생들은 치마 길이가 무릎 중간까지 닿아야 하는 규정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개중에 자세히 보면 이미 밑단을 잘라낸 곳에 윤용운 교사(생활지도부장)가 한 단만큼 천을 덧대서 길게 만들어 준 치마도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보수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다 내 자식처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윤 교사는 30년 교사생활로 미루어 볼 때 치마를 단정하게 단속하는 것이 공동체의 가치도 존중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격이나 개성을 무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직 미성년자니 사고가 온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죠. 또 저의 경험상, 치마가 짧아지면 그에 어울리는 장신구나 속눈썹연장술 등도 하나둘씩 추가되는 게 보통입니다”라고 말했다. 윤 부장은 연예인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나오는 교복 광고에 대해 “반드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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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치마 ‛길이 전쟁’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교문을 나온 후 허리부분을 접어 올려 2~3㎝가량 치마를 짧게 만들거나, 길이가 다른 2개의 치마를 준비해 학교 안과 밖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그러나 지역을 막론하고 하굣길과 번화가 거리에서 만난 학생들은 한결같이 “연예인의 짧은 교복 광고를 따라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진짜 이유는 단지 다리가 좀 더 길어 보이기 위해서라고 아이들은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우석(남, 36) 교사는 “아이들이 한결같이 다리 길이를 강조한 것 자체가 그만큼 광고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때 큰 히트를 친 모 교복회사의 광고 문구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리에 담아둠으로써 예전과 달리 ‛교복도 다리가 길어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 개성표현과 공동체규범 “둘 다 존중돼야”

반면 서울 마포구의 한 중학교는 지난해 공청회를 열어 치마 길이를 포함한 모든 복장·외모 규정을 폐지했다. 이 학교의 생활지도 담당 박소연(가명, 34) 교사는 “그날 이후 사소한 모든 싸움은 끝났다”고 말했다.

번화가에 있는데다가 부모가 생활에 쫓기는 경우가 많은 이곳의 아이들은 규제에 심한 반발을 보였다. 외모 단속 때문에 생기는 수많은 마찰은 다른 업무까지 마비시킬 정도로 교사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학교 밖만 나가면 거리에서 짧은 옷밖에 팔지 않는 세상 풍조, 10대 연예인들이 브라운관에 나와 파격노출을 하는 현실 속에서 적절한 길이의 치마를 강요하는 건 그야말로 ‛힘든’ 일이었다. 이제 이 학교 교사들은 치마가 짧은 대신 속바지를 꼭 갖춰 입고 수업시간에 바르게 앉으라고 지도한다.

교사 입장에선 짧은 교복 광고와 매스컴이 모두 골치 아픈 문제다. TV 드라마 속에서 인기 탤런트가 짧은 교복 차림에 염색머리와 메이크업을 하고 나타나면 아이들이 가장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그 모습을 따라 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이창호 실장은 “청소년기는 자아정체성이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연예인을 모방하기도 한다”며 교복을 개조한 듯한 연예인의 의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박 교사가 보기에 더욱 안타까운 건 자존감이 불안한 아이들이 외모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노스페이스’ 점퍼의 경우처럼 그것을 따라 하지 않으면 왕따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 박 교사는 “또래끼리 모방심리도 강하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많이 받고, 혼자 치마 길이가 길면 소외된 것처럼 느끼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연히 광고 속의 치마를 적정 길이로 유지하고, 방송에 출연하는 교복 입은 연예인들의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워낙 짧은 것을 선호하는 사회적 물결을 학교가 홀로 뚫고 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또 개성을 존중하는 것과 공동체의 규범을 지키는 것은 별개며 양립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인권조례 시행 이후에 복장에 대한 제재를 자신의 기본권 침해로 받아들이는 학생이 늘어났지만 개성과는 별개로 공동체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요즘 학생들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교사가 그에 맞춰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개성을 존중받으면서도 규칙을 존중하는 마음을 함께 가르쳐야 하죠.” 그는 ‛좋고 싫음’을 앞세우는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학부모들 “지나치다… 교복사에 시정 요구할 터”

광고의 치마 길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과 바람은 부모들의 경우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박진옥(여, 46, 서울 용산구 신창동) 씨는 현재 대학생인 두 딸이 중고등학교 시절, 하도 조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길이가 다른 치마 2개를 맞춰준 경험이 있다. ‘내 딸이 짧은 건 안 입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지만 비싼 사복값을 감당할 자신도 없어 결국 짧은 치마를 맞춰줬다.

그러나 속바지 입으라는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어도 우려스런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씨 역시 교복 광고와 함께 드라마 속 청소년 연예인이 착용한 짧은 교복이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며 규제와 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유미경(47) 씨는 계단을 오를 때 실제 속옷이 보이는 젊은 여성들을 보게 된다면서 “세상이 흉흉하니 항상 걱정되고, 교복광고도 치마 길이를 적절히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몇몇 학부모단체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교복시장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희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사무총장은 “일반적으로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기에 특히 남녀공학에서 여학생들이 지나치게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은 도움이 된다고 보기 힘들다”며 학부모단체들이 모여 교복 문제 해결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함께 연대해서 교복 제조사들에게 협조요청 공문을 보낼 예정으로, 기업이 스스로 시정을 하지 않을 경우 해당사에 대한 불매운동을 전개해서라도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사실 교복광고에 대해 2009년 1월, 교육과학기술부는 교복업체 4사와의 협의회를 통해 인기 연예인을 기용한 지나친 상업광고를 자제한다는 협조를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현재 교복광고는 TV가 아닌 카탈로그·홈페이지 등을 통해 주로 홍보된다.

하지만 TV 광고만 자제할 뿐, 광고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치마 길이는 교사·학부모뿐 아니라 많은 학생도 지나치다는 지적을 할 정도로 짧다. 그럼에도 오히려 TV 광고를 자제하다 보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상시 모니터링 범위를 벗어나는 의도치 않은 결과도 발생했다.

◆ 교과부 “교복사에 적당 길이 권고 예정”

일선의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이처럼 제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2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앉으면 무릎 위로 지나치게 올라가는 치마 길이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교복업체와의 협의회에서 짧은 치마와 변형교복 문제 등에 대한 강력한 시정 주문과 행정지도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 대중문화의 흐름이 지나친 노출을 조장하며 청소년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부분도 문제지만 일선 학교의 의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70년대 장발 단속하듯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 구성원(교사·학생·학부모)이 적절한 규칙을 협의하고 스스로 지킴으로써 자정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 일선 학교는 사회의 지나친 노출 풍조와 함께 상위 기관의 정책 방향으로 인한 혼선도 크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교과부는 개별 학교가 학칙을 통해 용의복장을 제재할 수 있도록 법령으로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만, 시·도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생의 개성 실현’을 강조함으로써 사실상 교과부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한 고등학교의 교감은 “교육적 소신에 따라 학생들 복장을 지도하고는 있지만 교과부와 시 교육청의 강조 방향이 달라 중간에서 곤란할 때가 많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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