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소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세상의 바보들이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의 택시 운전사는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주행 중에 줄곧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고, 둘째는 몹시 긴장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음으로써 인간 혐오증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나머지는 다른 승객들을 태우고 가다가 겪은 일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단순한 수다를 통해 자기의 긴장을 푸는 사람이다.”

우리들이 가장 흔히 목격하게 되는 택시 운전기사는 이 중에서 두 번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음으로써 인간 혐오증을 드러내는 사람 아닐까. 이런 기사들을 만나게 되면 없던 인간 혐오증이 솟구치고 불쾌지수가 급상승하게 된다. 그러니 택시를 탈 때면 혹시 그런 기사를 만나지는 않을까 하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택시에 올라 타 행선지를 말하고, 이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 기사가 어떤 사람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기분 좋은 목소리로 “예,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십중팔구 인간 혐오증 따위를 느끼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내릴 수 있다. 하지만 행선지를 말했는데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듣고도 못 들은 척 하는 건지, 귀머거리인지, 묵묵부답인 채 앞만 보고 운전만 하는 기사라면, 백발백중 인간 혐오증을 느끼게 된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도 요금계산기 작동을 멈추지 않고 꼼지락거려 순식간에 몇 백 원의 요금이 점프를 하게 되면 덩달아 혈압이 치솟는다. 잔돈 줄 생각이 아예 없는지 먼 산을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구차하지만, 약이 올라 “잔돈 주세요.” 하고 말하면, 마지못해 잔돈을 추슬러 건넨다. “옛다,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는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뒤로 쑥 내민다.

에코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택시 운전사를 알아보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잔돈을 일절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그가 바로 택시 운전사이다.”

에코의 주장처럼 잔돈을 잘 주지 않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면, 그런가보다 할 수도 있다 치자. 그런데 공짜로 타는 것도 아니고, 내 돈 내고 타는데도 기사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기분이 아무리 나빠도 아무 말 못하고 분을 삼켜야 하는 게 참으로 희한하다.

특히 아침 출근길에 택시를 잘못 타면 하루 종일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택시를 타고 기분이 좋아질 확률은 거의 로또 당첨 수준이다. 기분 좋아지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기분 나빠질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 싶은 심정으로 택시를 타지만, 역시 그러면 그렇지, 결론은 뻔하다.

해마다 연말이면 택시를 잡느라 난리를 겪어야 한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거리에 펭귄 떼들처럼 몰려 나와 택시를 잡겠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그게 하늘의 별 따기다. 택시가 올 때마다 90도로 허리를 꺾어 고함을 질러 보지만, 기사는 엿 먹어라 하는 표정으로 꽁무니를 빼버린다. 택시 문을 열고 올라탄 다음에 행선지를 말해야겠다고 꾀를 내 택시 문을 열어보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안에서 걸어 잠가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택시들이 사라질 때마다 가슴 속에 분노가 치민다.

택시기사들이 파업을 한다는 소식에 시민들이 시큰둥하다. 기사들의 처우나 수입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그래서 택시 기사 못해 먹겠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는 걸 시민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정부는 뭐 하는 거냐.”고 기사들을 응원해 주지 않는 것은, 평소 택시가 시민들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절봉사, 제대로 해 주시면, 시민들도 모른 척 하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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