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강대 국제한국학과 웨인 드 프레머리(Wayne de Fremery) 교수 ⓒ천지일보(뉴스천지)

김소월 시 관심 가지며 한국문학 본격적 연구
5년간 한국서 근현대 시·출판문화 자료 수집
漢詩 이해하기 위해 한문 배우며 열정 불태워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지난 1일 김소월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문학콘서트 ‘소월을 노래하다’가 열렸다.

현장에는 김소월의 증손녀를 비롯해 많은 시인과 소월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함께했다. 이들 중 한 외국인이 눈에 띄었다. 서강대 국제한국학과 웨인 드 프레머리(Wayne de Fremery) 교수다.

프레머리 교수는 한국에 오기 전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좋은 시를 쓰고 싶어 여러 나라의 시문학에 눈길을 돌리던 중 한국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 한국에 왔던 1995년,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던 프레머리 교수는 여느 외국인과 다를 바 없었다.

1년간 경기도 평택에서 영어강사 생활을 했던 그는 한국문학책을 찾아 헤맸지만 영어로 번역된 문학책이 없어 한국문학 공부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 돌아간 그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홀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마침 동네에 살던 한국인의 도움으로 한국어를 배우게 됐다.

“한국어를 가르쳐주던 이웃이 저에게 왜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지 물어봤어요. 한국시를 읽고 싶어 시작했다고 하니 버클리대 근처에 계신 한국인 시인을 소개해줬지요.”

이 한국인 시인은 프레머리 교수에게 한국문학과 한국시를 알려줬다. 또 당시 버클리대에 온 한국문학평론가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를 소개해줬다. 권 교수는 “정말 한국문학에 관심 있다면 한국으로 오라”며 프레머리 교수에게 서울대 국제지역원 입학을 권유했다.

권 교수의 말에 희망을 얻은 프레머리 교수는 1999년 한국을 다시 찾았다. 반년 동안 서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시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서울대 어학당 시절 선생님이 한국시 두 편을 소개해줬어요. 하나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었고, 또 하나는 윤동주의 ‘서시’였죠. 사실 당시는 윤동주의 시가 더 좋았어요.”

당시 그는 외국인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벅찬 김소월의 시보다 윤동주의 시가 더 좋았다. 뺨을 물들인 채 웃음을 터트리던 프레머리 교수는 “문학번역에 관심을 가지면서 김소월의 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말과 영어는 너무 달라 번역본에 정확한 의미전달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원문의 리듬은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리듬이 잘 표현된 시를 찾다가 김소월 시가 눈에 띈 거죠.”

석사과정 동안 김소월의 시를 공부하던 그는 ‘김소월의 시혼이라는 시론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석사논문을 발표했다.

프레머리 교수의 한국문학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에 입학한 그는 박사과정 종합시험에 합격한 후 2006년 여름, 박사논문 준비를 위해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5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연구에 공을 들였다.

당시 그의 연구는 한국문학계에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한국 근현대시와 출판문화’에 관한 내용이었다.

“기본적으로 문학의 의미와 책의 출판과정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김소월의 시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진달래꽃’이라는 시집을 어떻게 조판했는지, 누가 발행했는지, 인쇄한 사람은 누구인지, 독자층은 어땠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는 박사논문 연구 중 10여 년간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김소월의 생전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 초판의 두 가지 총판본 존재를 확인했다. 이 사실은 프레머리 교수의 연구팀과 권영민교수 연구팀이 비슷한 시기에 확인했지만 아쉽게도 직접적인 판본 확인은 권영민 교수팀이 한발 앞섰다고.

1920년대 시집은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것이 많아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자료를 요청했다. 대부분의 소장자가 흔쾌히 연구 자료로 시집과 잡지를 제공해 연구는 수월하게 이뤄졌다.

연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끝이 없었다. 하버드에 있을 당시 2년 동안 고전중국문학을 공부하면서 한시(漢詩)에도 관심이 많았던 프레머리 교수는 ‘아단문고’의 박천홍 실장을 알게 됐다. 그의 소개로 만난 추연 권용현 선생의 제자인 허호구ㆍ이충구 선생에게 한학을 배우게 됐다.

“박사논문 연구를 하면서 1920년대 한국에는 김소월, 김억 같은 시인들이 한시 번역을 많이 했고 또 직접 발표한 시인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근대문학은 한글로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한자도 많이 쓰였어요.”

근현대문학의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해 앞으로도 한문을 계속 배울 예정이라는 프레머리 교수는 기대감에 차있는 모습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최근 20~30년 전부터 문학사나 출판문화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근현대문학사에 출판문학이나 서지학과 같은 물질적인 분야의 연구가 부족해 안타까워했다.

“요즘은 컴퓨터와 e-book 등과 같은 기술적인 것이 발전하면서 문학에서도 물질적인 부분이 많이 변하고 있어요. 이럴 때 문학 (출판 당시) 원본에 대한 연구 없이 디지털 아카이브로 저장된 책만 접한다면, 책이 처음 가진 의미를 잊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까지 잃어버리게 될 거예요.”

한국 근현대문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 태평양을 건너 온 푸른 눈의 사나이, 웨인 드 프레머리 교수. 그의 열정이 세계적으로 꽃 필 한국문학사의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로 환하게 빛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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