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한 나라의 살림살이가 결딴나는 것은 개인의 살림살이가 결딴나는 것만큼이나 아차 하는 순간의 일이다.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풍광과 수산자원, 온난한 기후로 풍요로움을 구가하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금융 위기로 휘청거린다. 경제적으로 한 가족이면서 이들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유로존(Eurozone)의 여러 나라들도 이들의 어려운 처지에 선뜻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한국이 이미 겪은 1997년의 금융 위기를 돌이켜 보면 그 경험은 잊혀가고는 있지만 이들의 처지를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는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먹고 잘 살던 나라들이다. 복지의 천국인 유럽 여러 나라들의 유행을 따라 국민 복지에 분수 이상으로 예산을 펑펑 써왔다. 경제의 확대 재생산을 위한 생산적인 투자는 게을리 하면서 국민을 편히 배부르게 먹고 즐기도록 돈을 쓰다 보면 재정은 우물이 마르듯이 고갈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당면한 금융 위기 원인의 하나다. 일단 재정의 균형이 무너지면 망하는 것은 순간이다. 오늘날은 성장의 그늘로써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양극화의 불평등이 세계 도처에서 문제로 대두된 시대다. 더는 양극화의 그늘만을 짙게 하는 성장 지상주의, 성장 만능주의는 통용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보여주는 것처럼 적절한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고 국가의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복지 제일주의는 지속 가능하지가 않다. 유럽의 위기에서 한국이 배워야 할 타산지석이 있다면 그것이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한국의 지금 상황에서 우리 국민의 복지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 국가 재정에 만만찮은 도전이 되고 있다. 경제 외형 면에서는 한국이 잘 먹고 잘 살만한 나라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다가 산업화에 헌신한 인구의 노령화와 그로 인한 보상 심리, 성장 제일주의가 만들어낸 빈부 격차와 양극화의 심화,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전반적인 욕구의 증대, 여성들의 사회 참여 확대에 따른 보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 증대 등으로 복지 수요는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이같이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국가가 완벽하게 따라잡기는 쉽지 않지만 솔직히 한국만한 형편에서 우리만큼 복지 시책이 잘 펼쳐지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그렇지만 복지 욕구와 수요에 만족이나 포만은 없다. 국민의 복지 욕구에 호응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디딘 국가는 점차로 그 늪에 빠져든다. 국가의 강권 통제가 국민에게 먹히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모델인 신흥 경제 부국, 중국과 같은 나라는 다르지만 적어도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선거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늪에 빠져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경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나라에서 복지를 강하게 부르짖지 않는 정권은 인기가 없다. 복지를 노래하지 않는 정치인은 선거에서 뽑히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서 뽑혀야 하는 정치인들은 뒷감당을 생각하기보다는 우선 경쟁적으로 복지 공약을 쏟아낸다. 그들의 입에서 그 복지에 쓰이는 돈이 결국은 그들의 선심을 즐기는 국민이 부담하는 돈이라는 쓴소리를 듣기는 불가능하다.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그와 매우 흡사하며 그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권을 꿈꾸는 사람 중에 복지에 관한 담론을 입에 담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복지를 위해 성장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 국민이 더 근면해야 한다고 말하는 균형감 있고 정직하고 책임 있는 사람은 부각되지 않는다. 복지가 불필요하거나 싫다는 것이 아니라 복지 확대의 전제가 되는 방책도 내놓아야 정말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이며 국가 경영을 책임 있게 할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양극화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서민들의 삶이 팍팍한 현재의 우리 사회분위기는 복지에 관해 말하는 것은 환영을 받으나 성장의 필요성을 역설하면 왕따가 된다.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정치인들은 복지를 외치지만 성장에 관해 말하기를 거북스러워한다. 이는 확실히 우리 스스로 위기의 씨앗을 키우는 일이다.

남부 유럽 지중해 연안 나라들이 겪는 금융 위기도 복지를 둘러싼 정치인들의 인기 경쟁이 불러왔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인기 놀음으로 국민이 흥청거리고 즐기다 보면 국민은 게을러지고 나라의 곡간은 텅 빌 수밖에 없을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복지에 관한 담론이 홍수를 이루는 우리의 처지에서 유럽의 위기가 먼 산의 불일 수만은 없다.

일단 나라의 살림이 기울면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며 돈을 빌려주더라도 되돌려 받을 조건을 만들기 위해 혹독한 내핍과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그 같은 내핍과 구조조정의 요구는 돈 빌려가는 나라를 생각하는 순수한 이타심이 아니다. 남부 유럽 나라들의 위기 해소는 유럽의 경제 강국 독일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독일의 태도는 너그럽지가 않다. 독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된 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들어가는 통일 비용을 감당하느라 잠시 재정 운용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내 극복해내고 지금은 여유만만한 나라가 되었다. 유럽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위상은 세계 G2의 나라라고 떵떵거리는 중국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독일은 유럽의 중국과 같이 부자가 되기까지 낮은 임금 상승과 저(低) 인플레,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억제하는 고통의 감내를 정책으로 구현하고 생활화했다. 그것이 독일의 정책 스탠다드(Standard)다.

독일의 이 같은 정책 스탠다드와는 반대로 고임금과 고인플레, 저축보다 방만한 재정운용과 공사 부문에서 낭비를 일삼는 남부 유럽 나라들의 방식을 독일은 싫어한다. 위기에 처한 이들 나라들이 힘들어함에도 독일이 혹독한 구조조정과 허리띠 졸라매기를 요구하는 배경의 하나는 그러하며 이를 엄격히 수용하기에 고통을 호소하는 나라들과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는 요인이다.

주권은 각기 다르지만 경제적으로 단일 경제권을 형성한 유럽공동체(EU)의 앞날은 이 기싸움에 달렸으며 그런 의미에서 EU와 유럽은 위기에 서있다. EU는 역사적으로 유럽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해온 전쟁으로 인한 구원과 적대감을 해소하고 평화와 신뢰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세계 2차 대전 후 발의가 되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역시 주권이 다른 나라들의 이질적인 집합체이다 보니 고통을 기꺼이 분담하거나 그 고통을 한 가족의 그것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명백한 한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진정한 유럽 통합을 위해서는 연방정부로 국가 주권을 넘기는 미국과 같은 합중국, 유럽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Europe)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논의도 일부에서 나온다. 어떻든 위기를 경험한 국민으로서 우리가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에 각별한 눈길을 보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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