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상엔 많은 인종이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관심 밖에 있으며 아주 특이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민족이 있다. 바로 ‘집시’족이다. 이 집시는 이 세상에서 오랜 세월 핍박과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기도 했다.

인도 북부지역에서 기원한 코카서스 인종의 한 집단이기도 한 이 집시족은 현재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펴져 있으며, 짙은 피부색을 지녔다. 대부분 인도 북부에서 사용하는 인도 유럽어와 밀접한 집시어(Romany)를 쓰고 있다. 이 집시는 계속적인 이주를 통해 인도를 떠나 11세기에는 페르시아에, 14세기 초에는 유럽 남동부에, 15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유럽에 거주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20세기 후반에는 아메리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퍼져 나갔다. 이들의 인구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약 200~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집시가 주를 이루고 있는 지역은 중남부 유럽 등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집시족은 자기네들 이외의 사람들과는 절대 통혼(通婚)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 자기네들을 엄격하게 구별하여 민족으로서의 동일성을 계속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예부터 이 집시는 종종 추방이나 박해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대표적인 것이 1933년부터의 나치스에 의한 ‘집시멸절정책’이다.

그런데 이러한 집시족을 통해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집시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도 가는 곳마다 그들만의 문화를 남기고 있다. 그 나라에 재난이 닥치면 집시 때문이라는 고정관념이 그들을 추방시키고 반목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으면서도 유럽인들은 그들의 문화에 젖어 사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집시음악은 유럽의 문화를 지배해 왔다.

다시 말해 이 집시음악은 음악 전 장르에 걸쳐 영향을 끼치며 오늘에 이른다. 특히 집시음악은 바이올린의 선율에 실려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음악인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60년대 이후 7080세대에 이르기까지 이 집시 음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우리 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이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약 이천 년 전 유대 땅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도 북부에 근원을 둔 집시족과 같이 육적 내지 혈통으로 된 민족이 아닌 또 육적 유대인이 아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된 영적유대인(영적 이스라엘)이 출현하게 됐다. 그리고 이 영적유대인들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사명과 함께 그들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심한 멸시와 핍박의 대상이 돼 왔다.

멸시천대를 받으면서도 집시족이 남긴 문화는 오늘날 유럽은 물론 온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균형지게 하고 있는 것처럼, 멸시천대와 함께 예수로부터 시작된 기독교의 희생의 역사 역시 오늘날 종교의 역사는 물론 온 인류의 새로운 기원과 함께 문화를 형성해 왔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희생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기독교 문화는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 더 이상의 하늘 문화로 승화시켜 내지 못하고 오히려 땅의 문화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가슴 아파해야 할 것이다.

그 원인은 그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부패와 타락이 자초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때 즉, 부패와 타락이 만연함으로 새 세상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이때다. 육적 유대인들이 교만으로 인해 부패와 타락으로 밤을 맞을 때 하늘이 예수를 택한 것처럼, 오늘날도 영적 유대인들이 또다시 부패와 타락의 늪에서 유리방황할 때, 하늘은 이 땅 가운데서 한 사람을 택해 그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면 얼마나 믿어 줄까.

바로 이 시대에 있어지는 새로운 역사 또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핍박과 멸시와 천대의 역사임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믿든 안믿든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역사는 묵묵히 그리고 홀연히 진행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어찌됐던 집시의 하류 떠돌이 삶이 지금까지 온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던 것처럼, 또 이천 년 전 예수 한사람에 의해 시작된 핍박의 역사가 이천 년의 새로운 종교문화를 형성해 왔던 것처럼, 오늘날 있어지는 핍박의 역사 또한 훗날 종교사는 물론 온 인류의 새로운 기원과 새로운 문화의 지평을 열며, 온 인류를 이롭게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할 것이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과 또 현실은 믿는 이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과 함께 두려움으로 다가오겠으나 믿지 않는 이들에겐 여전히 핍박과 멸시의 대상이며 관심 밖의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선지자와 예언가들이 오늘 하루를 두고 미리 말해 왔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 이유는 훗날 듣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 핑계 댈 수 없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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