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지금 인성은 파괴되고 그로 인해 도덕불감증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심각한 것은 이 말세에 나타난 말기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과 특효약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세상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은 종교인데, 그 종교의 현실은 세상보다 더 부패했으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세상은 세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에 의해 운행된다고 하지만 그 지도자들 역시 지도자 되기를 포기한 지가 이미 오래됐으며, 오직 사리사욕에만 눈이 멀어 주변과 미래를 볼 여유가 없다. 이를 두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칠흑(漆黑)같이 어두운 밤 같은 세상이라 하던가.

지금 이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탄식소리뿐이건만, 그 누구도 애써 들으려하지 않는다. 성폭행, 권력형 금융비리에 의한 먹이사슬, 사금융거래로 인한 자살, 학교폭력 및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과 교사폭행, 부동산 및 건축경기의 장기침체로 인한 업체의 줄도산, 실물경제는 곳곳에 빨간불이 켜지는 등 절박하고 처절한 사안과 사연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돌아볼 생각도 해결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발뺌 전략과 함께 5년 동안 세운 공을 부각시키려는 움직임만 포착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금번 19대 국회는 시작부터 험로(險路)를 예고하고 있다.

분명 당선을 위해선 국민을 위해서 일하겠노라 다짐했던 그들이다. 그러나 막상 금배지를 다는 순간 작심삼일의 인생으로 전락하며 정당 내지 정당권력에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만다.

19대 개원을 앞두고 위에 나열한 민생현안은 뒷전이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차지하겠다고 싸움부터 시작하는 국회. 국민들은 이 한심한 정치판을 또 언제까지 지켜봐야만 하는가.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이라는 이상한 그룹을 만들어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한 사람을 위한 정치로 흘러가는 모양새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 친박은 당내 주요 요직을 독식했다는 자체가 이미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그야말로 친박 정치임을 증명하고 말았다. 대선을 앞둔 정치논리, 정치현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진정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고 정당이 되고자 한다면 이 같은 전략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진정 대선을 위한다며 국민들로 하여금 대선에 혈안이 돼 있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민생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고 협조하며 애쓰는 모습을 보이는 게 참으로 대선을 위한 참다운 전략임을 알려주고 싶다.

비박 역시 말 그대로 친박이 아닌 비박 그 자체가 목적이 됐다. 현실성 없는 자극적이고 즉흥적인 정견 발표로 일단 관심을 끌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방법으로는 국민들을 설득시키기 어려우며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민주통합당 역시 다르지 않다. 정권 창출과 무조건 반대와 상대 죽이기가 목적일 뿐 국민들을 위한 민생정치는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박지원 원내대표의 사상과 행보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자칭 박근혜 저격수를 외치며 연일 상대 흠집을 내고 있다. 이 또한 정치논리라 생각하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왠지 한 나라 수권정당의 원내대표로서 잘한다는 생각보다 비겁하고 유치하다는 생각과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결국 민주통합당의 정치수준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에 씁쓸하다.

또 지적받아야 마땅한 것은 임수경 의원의 탈북자에 대한 ‘변절자 논쟁’이다. 자유와 생명을 얻고자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은 그들에게 국민을 대표한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단순 정쟁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은 탈북자 당사자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요 궁색한 변명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반드시 응분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소속 정당에선 분명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는 게 심각하다. 결국 이 사안은 ‘색깔론’이라는 소모전으로 국력과 국세를 또 낭비하게 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뭐가 다른가. 이 시대에 가장 정의로운 정당이라 자처해 왔으며, 진보와 개혁의 선봉에 서서 차별된 세상을 부르짖어 왔던 그들이다. 하지만 가장 퇴보하고 가장 보수적인 집단임을 스스로 나타내고 말았으니 어느 하나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 앞에선 과연 어떤 지도자가 필요할까.

감언이설과 권모술수가 판을 치던 정치행태는 이제는 끝났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중세의 도덕률이나 종교관에서 벗어난 개인만이 강력한 정치가가 될 수 있다는 논리가 지금까지 기생하며 먹혀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중세 이탈리아가 재건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을 뿐 오늘날에 와서는 다시금 강한 비판을 받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이 산적한 백성들의 민생현안을 해결하고, 도덕률과 인성을 회복시켜 그야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군자삼면(君子三面), 지도자는 당연히 위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뒤엔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인성이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그리고 한발 더 다가가 보니 그 생각은 합리적이며 그 입에선 진리와 이치가 나오므로 모든 이들을 굴복케 하고 따르게 하는 그런 지도자를 이 시대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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