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이성묵(1962~  )

  팔순의 할머니를 아기처럼 무릎에 올려 앉히고 예순의 자원봉사 할머니가 흰 밥 한 숟가락 퍼 올려 입에 댄다. 자아, 드세요. 입술만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다 마는 입맛에게 왜 안 드세요? 말하고 한 숟가락 먹어보고, 맛있어요! 말하고 한 숟가락 먹어보고, 귀가 먼저 먹어서 먹을 것을 듣지 못하는 팔순의 할머니 귀를 열어 옳지! 옳지! 한 숟가락 넣어주고 또 떠 넣어주고 예순의 할머니가 어이쿠 벌써 다 드셨네! 앞섶에 묻은 밥알을 툴툴 털어내자 밥상이 어느덧 새하얗다.

귀 먹고 눈도 잘 안 보이고 몸도 가누기 힘이 든 팔순의 할머니를 아기처럼 무릎에 올려 앉히고 자원봉사 나온 육순의 할머니가 밥을 한 술 한 술 떠 잡수시게 하는 모습은 안쓰럽지 못해 눈물겹기까지 하다.
입맛이 없어, 귀가 잘 들리지 않아 꼼지락 꼼지락 간신히 입술만 움직이는 팔순의 할머니. 한 술이라도 더 잡수시게 하려고 ‘옳지! 옳지! 맛있어요!’를 연방하며 숟가락을 넣어주고 또 넣어주는 육순의 할머니.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르듯 두 할머니의 밥 싸움이 끝나자, 앞섶으로 떨어진 밥알들. 툴툴 털어내자 이내 밥상으로 새하얗게 쌓인다. 아, 아 이게 바로 두 할머니의 아름답디 아름다운 소망이 담겨진 첫눈. 바로 그 첫눈이로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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