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주말 밤, 아내와 아내 지인 부부와 함께 올림픽공원에 나들이를 갔다. 울긋불긋하고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린 장미 축제가 한창이었다. 각양각색의 장미꽃을 감상하며 페루 전통 음악 공연도 보는 호사를 누렸다. 장미축제장 한가운데 마련된 공식무대에서 3인조의 공연이 펼쳐졌다. 페루 인디언으로 구성된 이들은 춤과 노래를 곁들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페루전통 예술을 보여주었다. 공연이 끝난 뒤 공원 한 켠에선 페루출신 거리악사 2명이 즉석 공연을 하며 간이텐트에서 페루 전통 악기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평소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이몬 앤 가펑클의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였다. 팬파이프 연주로 나오는 맑은 소리와 악사의 깨끗한 음색이 공원의 밤 분위기와 조화를 잘 이뤄 듣는 이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페루의 민요에 사이먼 앤 가펑클이 가사를 덧붙여 만든 ‘엘 콘도르 파사’는 1960년 말 발표된 후 세계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곡이다. 서울의 지하철과 파리 등 유럽의 지하철 등에서 페루 출신 거리 악사가 부르는 것을 이따금씩 듣곤 했는데 이날은 아주 다른 느낌을 받았다.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제목으로 번안됐던 이 곡은 삶의 관조를 엿보이게 하는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데 이날 장소가 올림픽공원이라는 점 때문에 올림픽과 관련한 예전의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올림픽공원은 88 서울올림픽의 숨결이 남아있는 곳으로 인식됐다. 1981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후 서울아시아 경기대회와 서울올림픽에 맞춰 1986년에 조성한 올림픽공원에는 체조경기장, 펜싱경기장, 역도경기장, 사이클 경기장, 테니스 경기장, 수영장 등이 들어섰다. 올림픽공원은 동서 냉전을 넘어서 화합의 장을 이룬 서울올림픽의 상징적 장소로 공산권과 자유진영 선수들이 한데 어울려 세계의 스포츠제전을 가졌던 역사의 무대였다.

20여 년 스포츠 기자 활동을 했던 나에게는 중요한 취재 마당이 됐던 곳이다. 서울올림픽에서 감격적인 한국선수들의 금메달 시상, 각종 국제대회에서 세계적인 스타들이 힘과 기량을 겨루고 우정을 나누며 낳은 많은 화제들을 올림픽공원 현장에서 취재했다. 대한민국에서 스포츠 기자를 한 이라면 올림픽공원에 남모를 취재의 애환과 사연 몇 개쯤은 갖고 있을 법하다. 감동과 환호의 드라마도 있었고, 아쉬움과 탄식의 순간도 느꼈을 것이다.

사실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 올림픽공원의 활용방안에 대해 많은 걱정과 우려가 있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만든 올림픽공원이 제대로 관리가 될 수 있을까 의문시됐다. 올림픽 후 시설관리를 위해 한때 입장료를 받아 시민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올림픽공원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 각종 예술행사를 본격적으로 개최하면서부터였다. 잠실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등 다른 올림픽 시설물 등이 누적 적자를 보며 ‘애물단지’로 전락한 데 반해 올림픽공원은 올림픽 시설 등을 스포츠뿐 아니라 예술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개방시켰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주체가 된 올림픽공원은 그동안 세계적인 문화‧예술 행사들을 많이 개최했다. 올림픽 유산을 보존하고 국민들의 건강과 휴식공간을 마련하면서 세계 문화‧예술 교류의 전당으로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했던 것이다.

지은 지 30여 년이 됐지만 올림픽 공원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탈바꿈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넓은 공간에 자연녹지와 조각품들이 널려있는 올림픽공원에서 예술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대표적인 변화의 한 부분이다. 장미 축제에서 페루 거리 악사들이 연주하는 60년대 애창곡 ‘엘 콘토르 파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올림픽공원이 시대 변화를 잘 쫓아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엘 콘도르 파사’를 들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던 이유는 스포츠와 예술이 만나면서 인간적인 감동을 더 크게 느껴서일 것이다. 서울올림픽 공간도 마련하고 각종 스포츠 이벤트와 예술 행사 자리를 제공하는 올림픽공원은 어느덧 국민들의 대표적인 쉼터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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