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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사례 1. 지난 2007년 함경남도에서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김상현(가명, 48) 씨는 하나원을 나온 이후 직업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끝났지만 딱히 기술도 없고 학력도 없는 그가 들어갈 만한 직장은 없었다. 국내에 건너와 있는 중국 옌볜 지역 동포들과 함께 공사판을 전전하던 김 씨는 지역 하나센터를 통해 조금 더 나은 보수를 받는 단순 근로직으로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은 딱 거기까지였다. 강제북송 당시 얻은 병으로 아침에 일찍 나오는 게 너무 힘들어 몇 번 지각을 했더니 “북한 사람은 불성실하고, 제멋대로다”라면서 회사 측은 사정도 봐주지 않고 해고 처리를 했다. 이미 김 씨는 언어적 이질감으로 ‘왕따’가 된 상태였다. 결국, 김 씨는 다시 일용직 근로자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례. 2 지난 2006년 평안북도에서 탈북해 종교단체의 도움으로 딸과 함께 국내에 들어온 이소정(가명, 45) 씨는 요즘 걱정이 앞선다. 북한과 중국 생활을 하는 동안 몸이 너무 나빠진 탓이다. 탈북 과정에서 겪은 스트레스로 기력이 많이 소진된 것도 이유였다. 건강이 안 좋다 보니 일을 해보려고 해도 막막하다. 정착금으로 받은 돈은 브로커 비용으로 지불한 지 오래다.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딸아이 교육까지 생각하니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 사회가 탈북자 2만 3000명 시대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대다수 탈북자들의 삶은 비참하다. 국민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및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특히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지만 이를 돌보는 곳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그나마 젊은 층은 형편이 낫다. 문제는 40~60대 중년층이다. 특별한 전문성이 없는 경우 이들 연령층은 공부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취업을 하기 위해 일용직 근로자로 허드렛일을 하는 게 대부분이고, 그마저 북한에서 얻은 병으로 몸이 아프면 2~3달을 버티는 것도 힘이 들 때가 많다. 이렇다 보니 취업 → 해고를 반복하며 남모르는 상처를 받고, 어느새 다음 날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남한 체제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이 때문에 기회만 되면 해외로 나가려는 탈북자도 부지기수다.

그동안 수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탈북자들의 암울한 현실이 알려져 왔지만, 나아진 것은 별로 없는 상황이다. 목숨을 걸고 자녀와 함께 남한으로 넘어온 이들은 ‘취업’이라는 또 다른 생존의 벽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사상‧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를 도울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 제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목소리는 최근 탈북자들의 취업률이 떨어지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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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정보센터가 지난 2월 3일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경제활동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5세 이상 탈북자 중 취업자 비율인 고용률(만 15세 이상)은 전년 대비 2.1%가 떨어진 41%로 나타났다. 실업률 또한 전년대비 3.8% 증가한 13.8%로 조사됐다.

응답자 394명 중 비경제활동 탈북자는 206명(52.3%)으로 경제활동 탈북자(188명, 47.7%)보다 다소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2011년 통계청 발표 비경제활동 남한 국민 비율은 18.4%였다. 탈북자들의 비경제활동비율이 남한 사람보다 무려 33.9%나 높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탈북자들은 근로 시간이 남한 국민에 비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들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 47.2시간으로 일반 국민 45.1시간보다 두 시간가량 많았다. 이들의 평균 근로소득은 125만 9000원이었고, 직업별로는 장치·기계조작·조립·단순노무직이 40.7%, 서비스·판매종사자 27.8%, 전문기술행정관리자가 21.6%로 조사됐다.

특히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주된 요인에 대해 ‘심신장애’ 때문이란 응답이 37.4%로 가장 높았다. 일을 하고 싶어도 몸이 아프고 정신적으로 힘들어 일을 하지 못하는 탈북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다른 통계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사)북한전략센터가 지난 2008년 실시한 탈북자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입국 후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6.7%가 ‘정신적‧육체적 어려움’이라고 밝혔다. 정신적 어려움과 관련한 구체적 응답 내용에는 “몸이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 “탈북 과정에서 기력이 많이 쇠해졌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우울증에 걸려 몸이 좋지 않다” “혼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고독하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 힘들다” 등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현재 정부 당국은 탈북자가 일정한 소득조건을 만족하는 경우 5년의 거주지보호기간 중 남은 기간에 의료급여를 지속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는 그간 탈북자들이 고용보험 가입 작업장에 취업할 경우 1종 의료급여 자격을 상실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이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관련 탈북자 이태운(가명, 46) 씨는 “한국에 온 탈북자들 대다수가 오랫동안 앓고 있는 육체적 질병을 가지고 있다”면서 “5년이 지나도 치료가 안 되는 고질병이 많다. 기간이 넘으면 치료를 받으려고 해도 치료비가 너무 비싸서 받지 못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탈북 여성 단체 뉴코리아여성연합 이소연 대표는 “40~60대 탈북자의 경우 취업이 어렵고 건강상 문제가 많기 때문에 아주 힘든 삶을 살고 있다”면서 “보통 기초생활수급비에만 매달리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는 실정이다. 실질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런가하면 언어‧문화의 이질감으로 인한 불이익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질감 때문에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한국 실정을 모르니 직장 내에서도 차별대우를 받으며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잦은 상황이다. 결국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탈북자들은 업무능력과 무관하게 직장을 옮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2011년 통일부의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들의 이직률은 45%나 되고 한 직장에서 1년 넘게 근무한 비율은 32%에 불과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이 말을 할 때 상대방이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상처’를 받았고, 특히 ‘북한말’을 쓴다고 해서 직장에서나 학교에서 ‘왕따’가 되기도 했다.

탈북자 양미원(가명, 52) 씨는 “취직을 하려고 할 때 조선족이냐고 묻는가 하면, 언어 때문에 직장 상사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다”면서 “물건을 살 때나 자기소개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탈북자 지원 단체 관계자는 문화와 말씨의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행복한통일로 도희윤 대표는 “우리 민족은 원래 다양한 문화권에서 살았던 민족이다. 서로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면서 살아왔다”면서 “그런데 현대로 들어오면서 능력 유무를 떠나서 말씨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탈북자들을 차별하고 있다. 문화와 말씨가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진정한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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