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 운다-7.노인②] 자식 있어 해 뜰 날 없는 독거노인 “수급자 부러워”
[인권이 운다-7.노인②] 자식 있어 해 뜰 날 없는 독거노인 “수급자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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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가 아파서 방바닥에 앉지 못하는 김순덕(77) 씨가 지난 18일 사람 한 명 눕기도 부족한 부엌에서 작은 의자에 의존해 폐지를 정리하고 있다. 김 씨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 대상에서 제외돼 폐지 줍기와 봉사활동(동네청소)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젊어서 한 고생 끝 안 보여… 아픈 다리 끌고 생계유지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참말로 먹고살기 힘들어요. 자식 원망은 안 하지만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니 서글픕니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문 하나가 나온다. 이 문을 열고 서너 발자국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또다시 파란 철문이 보이는데 이곳은 김순덕(77) 씨가 유일하게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사글셋방이다.

지난 18일 해질녘 김 씨의 집안. 신발 3켤레 나란히 놓기도 부족한 현관과 이어져 있는 부엌은 천장에 닿을 만큼 쌓아올린 폐지로 가득했다.

김 씨는 아침 7시면 일어나 동사무소로 향한다. 오전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봉사활동(동네청소)을 해야 한 달에 20만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청소를 한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와 밥을 허겁지겁 먹고 폐지를 줍기 위해 다시 문을 나선다.

사실 김 씨는 다리가 아파 제대로 앉아 있거나 서 있지 못한다. 이 때문에 방 안에는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는 조그만 의자가 늘 대기 중이다.

김 씨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봉사활동과 폐지 줍는 일을 쉴 수 없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픈 다리를 매만져가며 일해도 한 달에 정기적으로 나가는 전기세, 수도세, TV수신료, 월세, 병원비, 약값을 감당하려면 번 돈으로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하다.

김 씨는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초생활 수급대상에 포함되기 위해 동사무소에 가서 몇날 며칠을 사정해보았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눈물을 훔치며 돌아선 김 씨에게 그나마 봉사활동은 뜻밖에 찾아온 행운의 일자리다. 폐지 모으는 일만 10년째인 김 씨의 하루 수입은 4000~5000원. 그러나 동네청소를 하고부터는 집세를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게 됐다.

김 씨는 “기초생활 수급대상자가 돼 일하지 않더라도 40만 원가량 돈을 지원받는 또래를 보면 속상하지만, 한 달에 20만 원이라도 벌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봉사활동은 1년 12달 중 3월부터 7개월 정도만 할 수 있어 나머지 기간에는 폐지 수입금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30대의 젊은이들까지도 폐지를 모으는 경우가 많아져 폐지 줍기마저 어려워졌다.

“죽지 못해 살아. 젊었을 때는 자식 위해 살고 늙어서는 안 움직이면 내 한 몸 지키기 어려우니까 살지.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이러한 생활을 계속 하겠지.”

김 씨와 언니 동생하며 지내는 장금례(76) 씨의 집은 다 어그러지게 생겼다. 골목길을 계속 따라가다가 막다른 골목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보이는 장 씨의 집. 지붕은 비닐과 방수포, 널빤지, 노란색 테이프 등으로 지저분하게 처리돼 있었다.

그나마 동네반장의 도움으로 지붕에 모래주머니를 올려놔 급한 불은 껐지만 주머니가 터져 흙이 쓸려 내려왔다.

장 씨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니 허름한 창호지 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방에 딸려있는 부엌은 한두 사람 서 있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에다 환기할 수 있는 창문조차 없어 장 씨가 음식을 조리하기에는 위험해 보였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각막 수술을 3번이나 한 장 씨도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대상에서 제외됐다.

방 벽에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와 손자의 사진으로 장식돼 있었다. 사진얘기를 꺼내자 할머니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자신은 사글셋방에 홀로 사는 노인”이라며 이내 신세를 한탄했다.

“다 무너져 가는 집인데 찾아와 줘서 고마워. 요즘 누가 이런 집에 오겠어.”

숭인동에서 산 지 8년째인 장 씨는 관절염 때문에 김 씨처럼 폐지 줍는 일은 엄두도 못 낸다. 동사무소에서 하는 봉사활동이 할머니의 생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창구다.

장 씨는 얼마 전에도 눈 수술을 했다. 그는 눈이 아프더라도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장 씨가 눈 수술을 위해 병원을 몇 차례 방문하는 동안 자식들도 찾아왔다. 그러나 비용 걱정에 자식들로부터 ‘차라리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장 씨는 자식을 감쌌다.

“애들도 속상하니까 한 말일 거야. 하지만 그때는 너무 상처가 됐어. 그나저나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약값이라도 혜택을 좀 받았으면 좋겠어. 수급대상자들은 혜택이 많은데 우린 전혀 못 받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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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이 2012-05-31 01:24:50
미래의 나의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 할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