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소진(蘇秦) 열전(2)
[사마천 사기] 소진(蘇秦) 열전(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종윤 소설가

연나라 문후를 설득시킨 소진은 한()나라에 가서 혜선왕(惠宣王)을 만났다.

한나라의 지세를 살펴보면 북쪽은 공락, 성고 등이 튼튼한 진지이며 서쪽은 의양, 상판 등이 요새입니다. 동쪽은 완, , 유수, 남쪽은 형산으로 국경을 견고히 하고 있습니다. 그 영토는 사방 구백 리가 넘으며 군사는 수십만에 이릅니다. 또 무기를 보아도 천하의 강궁과 강노가 모두 한나라 특산물입니다. 계자나 소부 지방에서 만드는 성능 좋은 활의 사정거리는 육백 보를 웃돈다고 합니다. 한의 군사가 이 활을 쏘면 백 발의 화살이 한꺼번에 날아갑니다. 먼 거리에서 쏘아도 화살이 적의 가슴을 뚫지만 가까이에서는 심장을 후빌 정도로 파괴력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사들의 칼이나 극()은 모두 명산에서 만든 것입니다. 당계, 합부, 묵양, 등사, 완빙, 용연, 태아 등의 명검들은 육지의 소나 말도 한칼에 두 쪽이 나며 물속에서는 따오기와 기러기를 베며 적과 마주치면 쇠로 만든 갑옷도 벱니다. 그 밖에 생산되는 가죽으로 만든 만현이나 순유 등속까지도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용맹스런 한나라 병사가 갑옷을 입고 한의 강노와 이로운 검을 가지고 싸운다면 마치 귀신에게 금으로 된 봉을 들린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처럼 강대한 군사력과 왕의 현명한 재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한은 진나라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선조의 체면을 욕되게 할 뿐더러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 쉽습니다. 이 점을 잘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왕께서 만일 진나라에 복종하게 되면 진은 반드시 한나라의 요새인 의양과 성고를 달라고 할 것입니다. 금년에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내년에도 반드시 새로운 땅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주다 보면 언젠가 한나라의 땅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 요구를 거절하면 지금까지 주어온 것은 헛된 것이 되고 오히려 화가 닥칠 것입니다. 한나라의 영토에는 한계가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습니다. 한정된 땅을 가지고는 끝없는 요구에 응한다는 것은 부질없이 원한을 사고 화를 입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리고 싸우지도 않고 영토를 잃는 꼴이 됩니다. 차라리 닭머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 한나라가 진나라에 계속 고분고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쇠꼬리가 아니겠습니까? 현명하신 대왕께서 무적의 군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쇠꼬리로 불린다면 이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나라 혜선왕은 한동안 분노의 표정을 짓고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불초한 나이지만 결코 진나라에 복종할 수 없다. 연나라 왕의 교훈을 받아들여 총력을 다해 따르겠다.” 그렇게 말한 연왕은 소진을 위, , , 초나라에 보내 6국 합종을 이루게 했다.

얼마 뒤 진나라 혜왕은 딸을 연나라 태자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해(기원전 333) 연나라 문후가 죽자 태자가 왕위에 올랐다. 그 분이 이왕(易王)이다. 그가 즉위하자마자 제나라 선()왕이 연나라가 국상 중인 것을 틈타 군사를 동원하여 10개의 도읍을 빼앗았다.

급보를 받은 이왕은 즉시 소진을 불러 들였다.

전에 선생이 우리나라에 오셨을 때 돌아가신 선왕은 마차를 갖추어 선생을 한나라, 조나라 등 여러 나라에 보냈습니다. 그 덕분에 6국의 합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합종국인 제나라가 그 약속을 저버리고 저번에는 조나라를 공격했고 이번에는 연나라까지 군사를 몰고 왔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우리 연나라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만든 것은 바로 선생입니다. 제발 제나라에 가서 빼앗긴 땅을 돌려받아 오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듣고 소진은 몸둘 바를 몰랐다.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되찾아 오겠습니다.”

소진은 제나라로 건너가서 제왕을 만났다. 소진은 우선 왕에게 이런 저런 칭송의 말을 전했다. 그런 다음 원망의 말을 계속 쏟아내었다. 불쾌해진 제왕이 그 까닭을 묻자 소진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사람은 굶어 죽기 직전이라도 오훼(독초 껍질)만은 입에 대지 않는다. 이 말은 먹으면 먹을수록 죽음을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연나라는 작은 나라이기는 해도 진나라와는 사돈 관계입니다. 그런 연나라의 영토를 빼앗았다면 제나라와 강대국인 진나라는 앞으로 원수가 될 것입니다. 작은 나라인 연나라를 침공한 것이 원인이 되어 진나라가 연을 보호하기 위하여 천하의 뛰어난 군사들로 제나라를 공격해 온다면 그것은 마치 오훼를 먹은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제나라 왕은 얼굴빛이 변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