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폼페이 유적에는 / 빈 구덩이로 남은 사람들이 있다지 // 살과 뼈가 삭아내린 / 그 구덩이에 석고를 부어 / 웅크리고 죽은 여자를 떠냈다지 // 얼굴을 어깨에 묻은 채 울고 있는 / 배가 부푼 구덩이도 있었대 // 푸른 신호등이 깜빡거리는 사거리 / 내게로 달려드는 차가 / 급정거하는 순간 // 펑 하고 플래시가 터져버린 / 환한 대낮 // 나는 왜 그곳이 떠올랐을까 // 지층마다 웅크리고 죽은 내가 / 어둠으로 다시 피어나는 곳 // 차들이 멈췄다 달리는 / 정지선이 지워진 사거리에서 - 폼페이에서 보낸 마지막 날

임현정 시인은 복잡 미묘한 단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시에서 시인은 세계의 빈 구덩이를 본뜸으로써 상실된 원형을 현재에 소환한다. 살아 있는 삶을 재현하기 위해 죽어 있는 삶을 드러내면서 ‘부재하는 삶’을 여기에 펼쳐내는 것이다. 묘한 울림이 남는 시집.

임현정 지음 /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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