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재 교수 ⓒ천지일보(뉴스천지)

20여 년간 41개 작품으로 해외공연 포함 105회 무대
전 세계에 우리의 우수문자 알리는 세계화 작업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지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기도 했지만, 세종대왕 탄신일 615주년이기도 했다. 세종대왕의 업적이나 그의 일생에 대해선 대부분 익히 알고 있지만, 정작 세종대왕의 탄신일이 스승의 날과 같은 5월 15일임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아울러 스승의 날이 만백성의 참스승이라고 여긴 세종대왕 탄신일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역시 잘 모른다.

이 같은 세종대왕탄신일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이숙재(67, 한양대) 생활무용예술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2~14일 대학로 아르코극장에서 한글춤 ‘뿌리 깊은 나무’ 공연을 펼쳤다. 공연을 본 관객들 대부분이 세종대왕 탄신일이 스승의 날과 같은 날이었는지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1991년 대한민국무용제에서 첫 작품 ‘홀소리 닿소리’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한글춤을 무대에 올린 이숙재 교수도 그간 한글날에 맞춰 공연을 올렸지만, 세종대왕 탄신일을 기념해 공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이 교수가 한글춤을 공연한 횟수만 해도 해외공연까지 포함해 41개 작품 105회에 이른다.

한글춤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과 세종대왕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이 교수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사)밀물예술진흥원에서 만나봤다. 한글춤에 얽힌 그의 사연에 대해 함께 나눴다.

-어떻게 한글로 춤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1980년도에 미국에 유학을 갔었다. 뉴욕대학(NYU) 재학 시절, 자신의 국가를 각각 대표하는 소재를 발표하는 수업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은 뒤 부채나 기와집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 알고 그것을 발표했다. 지도교수로부터 ‘그건 중국과 일본에도 있는데 한국만을 대표하는 건 없느냐’는 말을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에 우리가 갖고 있는 고유의 문화유산은 무엇이 있을까 하여 뉴욕 한국문화원에 가서 조사를 했다. 두 가지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한글과 금속활자였다.

특히 한글에 눈길이 갔다. 이전까지 한글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글자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한글이 우리나라의 역사와 정서, 삶과 의식주 등을 대표하는 산물인지를 알게 됐다. 그때부터 한글을 보는 시각이나 인식을 달리하게 됐고, 1984년 졸업과 동시에 한양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문화유산인 한글에 걸맞는 작품을 만들면 어떨까하다가 시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외솔회 등의 단체를 만나보고 자료를 수집했다.”

-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몸동작으로 표현했다던데,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세계 30여개 글자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 중에서 자기나라 글자를 보전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는 게 대다수의 견해다. 나는 한글에 대한 공연을 통해서 글자를 알리려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실, 우리의 예술혼을 표현하기 위해서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한글을 단지 채용했을 뿐이다. 한글을 매개체로 내가 아름답게 표현했을 때 공연을 보는 외국인은 사실 한글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관람한다. 하지만 그들도 똑같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 공감한다. 즉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는 이것이 바로 예술이다.

한글춤이 현재는 굉장히 세계적인 춤으로 인정을 받는 중이다. 한글은 천지인이 어우러진 삼위일체 사상과 음양오행을 가지고 세종대왕이 만들었기 때문에 타국민이 보더라도 정말 아름답다. 따라서 우리춤으로 만들기에도 적합하다. 한국춤 중 가장 아름답고 대표적인 게 음양의 춤이다. 즉 남녀 혹은 빛과 어두움 등의 대조대비로 상대방을 아름답게 존속시켜주는 것이 우리춤의 철학이다.

이런 측면에서도 한글은 굉장히 아름다운 글자로서 우리춤을 보여주기 적합한 글자다. 문자를 춤으로 하는 곳은 해외 단 한 곳도 없다. 물론 세종대왕이 춤을 생각하고 만들진 않았겠지만 춤으로 표현하기 적합한 하나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신기할 따름이다. 또 한글은 홀소리 닿소리, 즉 모음과 자음이 합쳐져야 의미가 전달되는 결합글자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한글이 독보적인 글자임을 깨닫게 해준다.”

- 한글춤을 만들 당시 주변에서 비판이 상당했었다고 들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예술 작품은 굉장히 당시 서정적인 면이 대세였던 시대였다. 한글춤 ‘홀소리 닿소리’ 하니깐 무용계에서는 ‘새마을 운동의 산물이다’ 하면서 춤의 제목으로는 표현 능력이 없다는 많은 비판이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제목이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것으로 시대가 바뀌고 있지만, 당시는 그게 먹히지 않던 시대였다. 또 한글학회 등의 학계에서는 ‘세종대왕에 대한 훼손 아니냐’는 비판을 했다.

그래도 이 같은 반대를 무릅쓰고 공연에 올린 결과, 성공적으로 마치며 모든 비판은 사그라졌다. 학계에서는 보고 난 뒤 ‘이것이야말로 정말 우리 한글을 아름답게 빛내고 세종대왕을 칭송하는 홍보매체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하면서 지금은 많이 도와주고 있다. 또 한글춤 창작 작업도 함께 하고 있다.”

▲ 다양한 한글춤을 선보이고 있는 밀물무용단 (사진제공: 밀물예술진흥원)

- 첫 작품 ‘홀소리 닿소리’의 호평 덕분에 이후 자신감을 얻고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왔다. 당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데는 어떤 사명감이나 목표의식이 있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것을 잘 알지 못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우리나라 것을 더 표현하도록 하라는 주변의 말에 자극을 받았다. 앞으로 세계적인 대회에 나가서 한국을 가장 잘 알리려면 내가 공감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콘텐츠를 가지고, 이것을 세계화시키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평생 한글을 가지고 한글이 주는 이미지와 여러 가지를 작품으로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견딜 수 있는 힘이 됐다.”

- 미국과 일본 우즈벡 칠레 등 해외에서도 30회 넘게 공연했는데, 반응은 어땠는지.

해외에서는 어떤 뜻인 모르지만 보고나면 다들 감동을 받는다. 끝나고 나서 인터뷰할 때 이것이 우리나라 글이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면 반응이 ‘한국에도 독자적인 글이 있느냐. 5천만 명 정도의 국민들이 독자적으로 단 600년 밖에 안 된 문자를 잘 보전하고 있는 나라는 처음 봤다. 그래서 한국이 IT로 성공한 것 같다’라며 놀라워한다. 핸드폰으로 문자 보낼 때 신속하고 정확한 천지인 자판기 등으로 하는 것 보면 우리는 정말 세종대왕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세종대왕을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2010년 한글날 공연부터는 제자 이해준(한양대 생활무용학과) 교수에게 바통을 넘겼다. 제자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이제는 한글도 글씨체와 어휘가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서 젊은 사람의 시각으로 보는 한글춤은 어떨까라는 궁금증도 있고 해서 이 교수를 안무가로 세웠다. 이 교수는 16세부터 나와 작업을 쭉 같이 해왔고, 주연 무용수도 여럿 맡아 누구보다 한글춤에 대한 이해는 굉장히 깊다고 생각한다. 한글의 외형적인 모습의 재미를 찾기 보단 심도 있는 철학을 가지라고 늘 조언을 한다.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남녀노소 빈부격차가 없이 누구나 즐기고 공감하는 작품을 만들 때, 그것이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등의 주의도 주고 있다. 첫 단계라 아직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누구보다 빠르게 근접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한글이 더욱 세계화되려면 어떤 작업이 필요한 것인가를 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겠고, 그로 인해 좋은 콘텐츠가 되어 세계화 작업을 한걸음씩 해 나아가도록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사람의 무용스타일이 차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일단 글자가 주는 실제적인 이미지의 고난이도의 무용으로 작품에 담는다면 이 교수는 스토리텔링 형태의 작업을 한다. 이번 ‘뿌리 깊은 나무’ 공연을 본다면,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훈민정음의 핵심을 가지고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만들어 콘텐츠 작업을 했다. 이것이 바로 이 교수의 작업 스타일이다.

-리허설 도중 약간의 의견차를 보이는 모습을 봤는데.

“아무래도 의견차이가 있다. 때론 스승과 제자를 떠나서 다시는 안 볼 듯이 굉장히 치열하기도 하다. 자기 의견에 대해서는 의견을 쉽게 굽히지 않는 것이 또 예술가다. 이 같은 각자의 의견차이도 소통의 부재라 생각한다.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합일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하나의 과제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한글춤이라는 것은 누구 특정인의 것이 아니다. 이면적으로 들어가면 보면 춤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면을 갖고 있다. 그래서 무용하는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이숙재의 것이 아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분야로 생각해 함께 연구해 나갔으면 좋겠다. 특히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이 문화유산을 보전하기 위해서 예술가와 무용가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할 수 있는 일을 공청회나 세미나를 통해 연구해나가는 일을 하고 싶다. 올해 10월이면 한글날 공연이 또 있을 것 같다. 다른 제자들도 많고 하니 골고루 기회를 줄까 생각 중이다.”

-한류가 대세다. 한글춤이 한류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비보이나 댄스스포츠는 굉장히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 순수예술은 항상 약하다. 이것이 한류의 근본인데 안타깝다. 예술적인 차원에서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보려면 순수예술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한류의 발판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의 배려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 우리 순수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업 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티켓을 팔아서만 충당하기 어렵다. 정말 아름다운 예술을 하는 만큼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나아가 한류가 뜨려면 이런 순수예술 분야에서도 국가적인 뒷바라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한류의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글춤을 볼때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선입관은 안 가졌으면 좋겠다. 정말 한글에 대한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국민이 되어서 한글춤뿐 아니라 한글에도 자부심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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