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우유, 커피에 이어 맥주까지 마신다’는 개념으로 설정된 피겨여왕 김연아의 맥주 광고는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결코 지울 수 없다.

이달 대중 매체에 본격적으로 선을 보인 김연아의 맥주광고의 내용은 이렇다. 젊은 남성들과 춤을 추고 마이크를 잡고 노래까지 부른다. 이어 전자기타를 연주하며 아이스댄스 포인트라는 설명에 이어 김연아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살아있는 깨끗함’이라고 말하며 특정 맥주회사 제품을 선전했다. 여러 버전의 동영상 중에서 김연아가 혼자 나오는 버전에서는 그녀의 허리 라인과 힙라인이 집중 부각됐다. 청순한 이미지를 걷어내고 섹시한 어필에다 술 먹는 모습까지 가미시켰다. 기존 전자, 자동차, 금융, 우유회사 광고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이고 파격적인 모습이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김연아는 국내 광고시장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스타였다. 한 편당 10억여 원을 받을 정도로 광고 대박을 터뜨린 김연아는 밀려드는 광고에 어쩔 줄을 몰랐다. 올림픽 이전 선수 후원계약을 맺었던 IB스포츠와 법정싸움 일보 직전까지 가는 진통을 겪은 뒤 독립회사를 차린 김연아는 이른바 ‘초우량 광고주’의 최고 광고모델 감이었다.

아직까지 광고 선호도에서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김연아가 맥주 광고 모델을 한 것은 시기적, 방법적으로도 적당하지 않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맥주 회사가 그녀를 맥주 모델로 쓴 것이 결코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 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 날 등이 겹쳐있는 5월에 김연아를 맥주 모델로 기용했다는 점이다. 성인의 나이를 갓 넘긴 김연아는 아직 대학생 신분으로 지난주 서울 진선여고에서 교생실습을 하고 있다. 예비 선생님으로 청소년 앞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마당에 광고에서는 춤을 추며 맥주를 마시는 모습은 영 어울릴 수가 없다. 5월이라는 시간적 타이밍도 잘못됐고, 춤을 추며 맥주를 마시는 방법도 적절하지 못했다. 어린 여고생들이 김연아의 맥주 광고를 보고 어떠한 생각이 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심히 걱정스럽다. 청소년들의 비행과 탈선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의 스포츠 영웅인 김연아의 술 마시고 춤추는 광고는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좋게 보일 수가 없다.

외국에서도 스포츠 스타가 맥주 등 술 광고에 출연하는 경우는 많다. 일본 프로야구의 간판스타 스즈키 이치로가 기린 맥주의 광고모델로 활동하고, 미국의 프로야구 스타들도 맥주 모델로 활약한다. 하지만 이들은 프로스포츠에서 돈을 받고 활동하는 스타라는 점이 김연아의 신분과는 다르다. 김연아는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지만 엄밀히 말해서 돈을 우선시하는 프로스포츠 스타와는 차이가 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활동하는 현역 선수신분으로 술 광고에 나서는 것은 공익적인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 정통 스포츠인의 자세는 아니다.

김연아가 시장경제의 논리로 원칙없는 각종 회사 스폰서가 난무하고, 상업주의에 물든 프로 스포츠의 영역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은 아직 피겨 국가대표 선수에서 은퇴하지 않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 태극마크를 달고 각종 올림픽과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한 술 광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진짜 돈이 궁해 돈벌이에 매진하기로 했다면 국가대표 선수에서 은퇴를 선언해야 할 것이다. 올림픽 등에서 스포츠로 나라를 대표하는 공인이 아니라면 술 광고를 하든, 담배 광고를 하든 누가 상관하지 않을 바다.

누리꾼들과 김연아 팬들 사이에 김연아의 맥주 광고를 놓고 많은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은 그가 스포츠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명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연아가 이 사회의 공익적 가치를 생각하는 시대의 영웅이라면 술 광고 출연 등은 좀 더 심사숙고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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