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민주유공자회(공법단체)설립추진위원회에서 김공휴 대변인. ⓒ천지일보(뉴스천지)

5.18 민주유공자회(공법단체)설립추진위원회 김공휴 대변인 인터뷰

[천지일보 광주=이지수 기자] “32년이 흘렀지만 어제 일 같습니다. 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5.18 민중항쟁 유공자인 김공휴(53) 씨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재 5.18 민주유공자회(공법단체)설립추진위원회에서 대변인을 맡고 있다. 이 단체는 5.18 유공자들이 제대로 혜택을 받을수 있도록 5.18 민중항쟁 부상자들과 유족 단체를 하나로 통합해 공법단체로 추진하는 일을 하고 있다.

1980년 5월 18일 그의 나이 21세였다. 시내에 나갔다가 학생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계엄군에게 사정없이 맞았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인데 시민을 왜 폭행하는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 의구심을 풀기 위해 시민군에 가담하게 됐죠.” 김 대변인은 당시 도청을 지키기 위해 시민군 50명이 결성한 ‘기동타격대’에서 활동했다.

“당시 부녀자와 아이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은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모두 도청에서 내보내고 남아있는 사람 중에 50명이 ‘기동타격대’를 결성해 계엄군과 맞섰죠.”

당시 5월 27일 계엄군은 사방에서 총을 쏘며 도청으로 진입했고 김 대변인은 2층에 있다가 붙잡혔다. 그는 이후 상무대 영창에 끌려가서도 갖은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10년 전까지만 해도 신경안정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현재도 술로 잠을 청할 때가 잦다고 한다. 또 그때의 정신적 충격으로 고문과 구타를당하는 꿈을 자주 꾸고 군인들이 총을 난사하는 환청이 들릴 때도 있다고.

그는 5.18민주화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고 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혜택을 받지 못해 생활고나 어려움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80년 이후 5.18 유공자 중 자살자가 전체 10%가 넘어요. 이것을 하루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법단체가 돼 회원들이 유공자로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젊은 세대들이 그날에 있었던 민주화운동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줬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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