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는 인간의 본성마저 무너진 아주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는 우리의 내면을 지탱해 온 종교가 타락했기 때문이며, 그 결과는 온 세상이 빠져 나올 수 없는 늪이 되게 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 늪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종교가 회복되어야 한다. 종교가 회복되기 위해선 종교의 현실을 알고, 그 현실 속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수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신앙은 신앙의 주인이 원하는 신앙이 아닌 자기만족과 자기신념에 찬 기복신앙이며 자기신앙이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많은 신앙인들은 신앙 안에서 기적과 이적과 표적과 같은 체험을 갈구한다. 그리고 그 기적과 이적과 표적은 언젠가 자신에게도 일어날 것이란 막연한 믿음과 함께 신앙을 하고 있다. 또 실제 그 같은 체험을 했다라고 믿고 간증까지 하는 이들도 많다.

방언을 한다거나 병든 자를 고쳤다거나 천국과 지옥을 봤거나 갔다 왔노라고 하는 것 등이 그 예다.

2천 년 전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오병이어나 실로암 사건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등 기적과 이적을 보였으며, 그 제자와 사도들 또한 그리했다.

여기서 깨달아야 할 점이 있다. 2천 년 전 예수가 보인 기적과 표적을 통해 하나님이 의도하는 바를 깨닫는 것이 중요했다. 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 이것은 분명 기적이요 표적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따랐다. 하지만 예수는 자기를 따르는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지적했다면, 이 지적의 의미는 과연 뭘까. 그렇다, 예수의 오병이어의 표적은 단지 굶주린 사람들의 배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떡 다섯 덩어리로 오천이나 되는 굶주린 자의 배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능력자 즉, 하나님이 보낸 자임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했다.

그 후 유대인들이 또 다시 예수에게 와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했으나, 천기는 잘 분별하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함을 책망했음을 기록을 통해 알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분별하지 못해 책망 받은 시대의 표적은 뭘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고 하신 것처럼 바로 ‘요나의 표적’이었던 것이다.

이 요나의 표적은 고기 뱃속에서 사흘 만에 살아 나와 악한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시킨 바로 그 사건인 것이다. 이 사건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이루실 구속의 일을 미리 예시(豫示)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요나의 표적은 곧 하나님께서 구약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시고, 그 약속한 일 즉,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함으로써 구약을 이루게 되는 그 일이 바로 기적이요 표적이란 뜻이 된다.

한마디로 요나의 표적은 구약의 약속대로 오셔서 약속한 일을 이룬 것이 바로 시대의 표적이었던 것이며,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표적의 의미를 이제라도 알았다면 오늘날의 기적과 이적과 표적을 아는 게 중요하다. 2천 년 전 예수는 이 땅을 떠나시며 내가 아닌 ‘다른 보혜사’를 보내 줄 것을 약속했다. 그러시며 예수는 나는 와서 비유(比喩)와 비사(泌辭)로 말을 했지만, 내가 구하고 하나님께서 보내는 다른 보혜사는 진리를 가져 올 것이라고 했으니, 오늘날 약속대로 오는 보혜사는 바로 ‘진리의 성령’이 되는 것이다.

진리(眞理)란 무엇인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것’이 진리다. 그렇다면 예언을 했다면 그 예언대로 이루어진 실상과 실체가 있음으로 진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씨라면 2천 년 전 예수의 복음의 씨가 뿌려진 예수교회에서 알곡을 추수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약이요 신약의 목적이다. 이처럼 신약의 약속대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진리요 표적인 것이다.

오늘날 신약이 이루어진 실상인 이 시대의 표적은 믿지 아니하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신 것처럼, 2천 년 전과 같이 병 고치는 일과 기복신앙적 기적과 이적과 표적을 구한다면 이 시대야말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아니고 뭐겠는가.

이 시대에 구약이 아닌 신약이 약속한 목자는 동방 대한민국에서 신약을 이루고, 그 이루신 진리 즉, 표적을 가지고 다시 신약의 예언의 씨를 뿌렸던 유럽으로 가, 신약이 이렇게 이루어졌노라고 증거하는 동성서행(東成西行)의 걸음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곳에선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선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선지자가 신약의 약속이 오늘날 이렇게 이루어졌노라고 증거할 때, 그 증거에 눈물을 흘리며 아멘으로 연호하는 등 성령의 불길이 유럽을 휩쓰는 또 다른 표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굳이 부인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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