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세상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가고 바람은 부드럽고 햇살은 따사롭다. 연중 가장 축복받은 시기가 이 맘 때지 싶다. 무엇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부부의 날이 있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 날도 있고 해서 이래저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스승이란 말이 원래는 출가한 중의 선생님, 사승(師僧)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고, 은사(恩師)라는 말도 처음 중이 된 후 길러준 스님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선생님의 은혜라는 것이 부처님의 향기로운 말씀을 널리 전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스님들의 공덕과 같은 것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스승의 날을 맞아 조사를 해 보았더니, 교직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잃은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고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 명퇴 하는 교사들도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 지도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라는데, 학생 인권이다 뭐다 해서 아이들 대하기가 힘들고, 요즘 아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공주 왕자처럼 대접받고 자라서 그런지 학교 선생님들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부처님 공덕을 기리는 이 계절에 참으로 듣기 민망한 소식도 들렸다. 스님들이 호텔에 모여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도박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스님이란 ‘승(僧)님’에서 나온 말인 것 같은데, 이 분들은 ‘님’ 자 붙여 부를 자격이 없다. 이것 말고도 더 고약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같은 절집에서 나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스님, 너나 잘 하세요!” 소리 나올 법 하다.

야단법석(野檀法席)이란 말이 있다. 야단(野壇)이란 야외에 세운 단, 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으로, 야외에 단을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설법을 들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법당에 다 수용할 수 없을 때 바깥에서 설법을 하는 것이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자연 소란스럽고 어수선해지는 것이다.

정치판이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진보(進步)라는 본래 뜻하고는 너무나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는 사람들이 결코 민주적이지 않고, 약자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그들에게 표를 주고 돈을 준 약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사람은 어려울 때 본심이 드러난다. 평소 점잖은 척, 정이 많은 척, 의리가 있는 척하다가 막상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는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며 생떼를 쓰거나 악다구니를 퍼붓고, 오물을 뒤집어쓰고 길바닥에 드러눕기도 한다.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고, 죽여 버리겠다며 위협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미안해 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막장으로 몰리면 그럴 수도 있다. 개그맨 김구라는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막말을 하고 심한 욕설을 한 탓에 방송에서 물러나고 타격을 입었다. 김구라의 막말과 욕설은, 당시 더 잃을 것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던 가난한 무명 연예인의 처절한 생존전략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잘못했다고 인정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그의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정치판 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기절정의 개그프로에 등장하는 ‘용감한 녀석들’은 우리를 즐겁게 하지만, 현실 속의 ‘용감한 녀석들’은 우리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사랑, 말씀, 은혜 같은 아름다운 것들만이 가득한, 그런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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