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종교Ⅲ]① 한민족 역사·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불교’
[SPECIAL-종교Ⅲ]① 한민족 역사·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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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대승불교의 불화 ‘영산회상도’다. 이 그림은 대승불교미술원 공우 이진경 선생 작품으로 부처의 설법을 듣는 국왕·대신 등 청중들을 실감 나게 묘사해 모든 사람을 경지에 싣고 간다는 대승불교의 교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진제공: 이진경 선생)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예로부터 하늘을 섬겨온 우리 민족은 종교성이 많아 토속신앙을 포함해, 외래 종교까지 다양하게 발전돼 왔다. 우리나라에 정착한 대표적인 외래 종교가 바로 불교다.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파된 불교는 1600여 년의 세월을 한민족과 함께하며 우리네 삶에 깊이 뿌리내렸다. 특히 올해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8만 4000법문을 한 자 한 자 목판에 새겨놓은 세계기록문화유산 ‘팔만대장경’ 판각 1000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는 드라마, 문화공연, 학술회의 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현재 방송 중인 지상파 드라마 ‘무신’ 또한 대장경 판각 1000년을 기념해 제작된 드라마다. ‘무신’의 주인공 김준은 갓난아기 때 축령사라는 암자에서 ‘무상’이라는 법명을 받고 자란 스님으로 등장한다. 불교를 국교로 한 고려시대 무신 정권을 배경으로 연출된 무신은 여러 스님과 사찰 등 불교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고즈넉한 사찰로 비치는 축령사의 배경이 된 곳은 합천 해인사다. ‘무신’을 통해 팔만대장경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석가모니 ‘생로병사’ 고뇌하다 불교 창시
불교는 세계 3대 종교로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었다. 불교의 창시자는 고타마 싯다르타이며 석가모니로 불린다. 석가모니는 네팔의 작은 나라 샤키야족의 중심지인 카필라성에서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29세 때 인생의 생로병사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으며, 35세에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됐다.

이 깨달음의 내용이 4체(四諦)·12연기(緣起)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8정도(八正道)다. 그는 녹야원에서 다섯 명의 수행자를 교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설파, 교단을 형성했다. 불교는 석가모니의 설법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 교화의 여행은 갠지스강 중류의 넓은 지역에까지 미쳤다. 제자의 수도 점차 증가해 각지에 교단이 조직됐다.

45년간 교화 활동에 힘쓴 석가모니는 80세가 되어 입멸해 열반에 들고 종단은 제자 마하가섭 등이 중심이 돼 석가모니의 율(律)과 법(法)을 유지하게 된다. 이후 그의 가르침은 제제들에 의해 교법이 정리되고, 여러 도시와 일반 서민들에게 전파되어 갔다. BC 317년경 찬드라 굽타(Chandra Gupta)에 의해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인 마우리아 왕조가 성립되고 이 왕조 제3대 왕 아소카가 즉위한 후 불교는 비약적인 팽창을 하게 된다. 이로써 전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교 세계 3대 종교로 부흥
석가모니, 깨달음 후 45년 교화
열반 후 제자들 교법·조직 정비
고구려 소수림왕 때 국내에 전파

◆신라·고려시대 국교로 부흥… 조선시대 쇠락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시기는 고구려 17대 왕인 소수림왕 2년(372)이다. 그해 2월에 중국의 북부에 자리 잡고 있던 나라인 전진의 왕 부견이 순도라는 스님으로 하여금 불상과 경전을 보내옴으로써 공식적인 불교의 전래가 이루어졌다. 2년 후에 아도라는 스님이 왔으며, 그 이듬해에 초문사와 이불란사라는 최초의 사찰이 세워졌다. 백제에는 제15대 침류왕 원년(384) 그해 9월에 동진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인도의 스님 마라난타가 처음 찾아와 불교를 전파했다. 왕은 교외까지 나가서 스님을 맞이하고 이듬해 2월에는 한산이라는 곳에 절을 짓고 열 사람의 스님을 출가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신라는 토속신앙의 반발 등 약간의 난관을 거쳤으나 법흥왕 14년(527)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왕실을 중심한 귀족들이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고구려·백제·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뒤 한국의 고대 불교는 찬란한 황금기를 맞이한다. 전국 곳곳에 사찰이 세워지고 국왕으로부터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불교를 신앙했다. 특히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불연국토 사상이 깊게 뿌리내려 불교는 국가의 보호 아래 화려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 고려시대 왕실의 보호로 발전하던 불교는 조선왕조의 출현과 함께 급속하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조선은 숭유억불정책을 편 것이다. 불교는 7개 종파를 통폐합해 축소하고 사찰소유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고 도첩제도를 엄격히 시행해 일반사람들이 승려가 되는 길을 봉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려시대의 제도였던 왕사·국사제도를 폐지하고 승려의 사회적 지위를 최하층민의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이 같은 억불정책은 조선후기까지 유지 된다. 조선후기의 불교 상황은 승려의 사회적 신분저하로 도성출입마저 자유롭지 못한 형편에 이를 정도로 쇠락했다. 이후 일본에 의해 억불정책의 모든 규제는 풀렸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거친 불교계는 1954년 왜색승풍을 청산하기 위한 정화운동이 불기 시작했으나 기득권과의 마찰 등으로 교단들이 여러 종파로 분열된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과(제출자료 근거)에 등록된 한국불교 종단은 최대종단인 조계종을 포함 103개 종단(미파악 65개)으로 분열돼 있다.

1600년 찬란한 문화 꽃피워
韓고대불교, 국교로 급속히 부흥
팔만대장경 등 세계문화유산 남겨
올해 대장경 판각 1000년 되는 해

 

▲ 해인사 장경판전(대장경을 보관한 건물)은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팔만대장경은 2007년 세계기록유산을 등재됐다.ⓒ천지일보(뉴스천지)

 

◆불교 찬란한 문화유산… 유적 약 60~70% 차지
불교는 1600여 년의 유구한 역사 동안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세계유무형문화유산과 기록문화유산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많다. 직지심체요절부터 해서 석굴암, 에밀레종, 팔만대장경, 영산재 등 국내 유적의 약 60~70%를 불교 문화유산이 차지하고 있다. 불교의 영향은 유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과 타종교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 예로 우리나라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천당이나 지옥, 장로, 영혼 등이 원래 불교에서 사용되던 용어였다. 공부라는 용어도 불가에서 참선을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 외에도 이판사판, 인연, 찰나, 이심전심, 아비규환, 야단법석, 아수라장 등 헤아릴 수 없다.

일상용어와 지명에도 불교적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안양시의 ‘안양’은 불교의 극락을 의미한다. 서울의 보광동이나 미아동 역시 모두 불교에서 유래했다. 불광동도 그 지역의 불광사라는 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불광동성당이 있다는 사실. 산 이름에도 불교 용어가 셀 수 없이 많다. 풍수가 좋은 산에는 반드시 절이 있다. 명산과 산봉우리의 이름도 금강산 두타산 그리고 문수봉 원효봉 관음봉 미륵봉 비로봉 등 불교 용어가 많다.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최준식(한국학과) 교수는 “불교가 우리 민족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 문화 속에는 불교라는 큰 기둥이 있다”며 “근세에 들어와 한국인들은 한국형의 새로운 불교를 만들어냈다. 원불교가 그것이다. 불교는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종교’라는 큰 틀 안에서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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