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경림 씨가 지난 7일 강남 행복한도서관을 방문한 아이들에게 동화구연을 해주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 보면 덩달아 행복해져요”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서울 강남 대치동에 위치한 행복한 도서관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가 되면 어린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동화구연을 듣기 위해서다. 지난 7일에도 어린이 열람실에서 어김없이 동화구연이 흘러나왔다. 어린이에게 명작동화나 옛 전래동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는 봉사를 하고 있는 라경림(64) 씨. 이날은 특별히 ‘말하는 거북이’라는 전래동화를 인형극으로 꾸몄다.

라경림 씨는 어린이들의 흥미를 북돋아 주기 위해 손수 인형을 만들고 인형극에 출연하는 인물들의 목소리도 되풀이 연습한다. 인형극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옷도 검은색으로 입었고 미리 다운받아 놓은 휴대전화 음악에 맞춰 노래도 불렀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 등 다양한 목소리를 구사해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도서관뿐 아니라 학교 등 어린이와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이 같은 동화구연을 했다. 5년 전 동화구연 기초와 심화과정을 마친 후 이렇게 쭉 봉사활동을 해오다 보니 이제는 동화구연 전문가가 다 됐다. 소싯적에 이와 연관된 일은 해본 적은 없다고 하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제가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아이들도 다 크고 해서 우연히 동화구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내 적성을 발견한 거죠.”

아이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갖고 동화의 즐거움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봉사다. 라 씨는 사실 동화구연 봉사를 하기 전에는 책을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한 녹음봉사도 6년가량 해왔다.

“동화구연을 하면서 제 인생의 2막이 오른 것 같아요. 몸이 아프다가도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하면 힘이 불끈 솟아 언제 아팠느냐는 듯 일어나요. 신기하죠?”

라 씨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줄 때 덩달아 행복해진다며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라 씨는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동화를 들려주기 위해 보통 2시간 정도 공들여 동화를 선정한다. 또 매번 동화만 읽어주면 지루할 수 있으니 이날과 같이 특별공연도 준비한다. 이를 위해서는 꼬박 하루는 교구를 만들어야 한다.

라 씨는 “눈으로 보여주는 공연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며 “책을 읽어줄 때 오히려 아이들이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게 된다”고 그간 경험을 통한 노하우도 살짝 귀띔했다.

또 아이들 두뇌 회전과 손가락 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동화에 나온 주인공이나 동물 등의 종이접기도 하고 있다.

라 씨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학원을 몇 개씩 다니는가 하면 우울증 증세도 있어 안타깝다”며 “엄마들이 너무 조급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키우면 인성을 갖추기가 어렵다”며 “아이들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해주면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 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처음 봉사활동을 했던 초등학교에서의 귀중한 경험 때문이다. 그는 “처음엔 아이들이 내가 앞에 있는데도 딴짓을 하거나 심지어 욕도 했다”며 “그런데 안 듣는 척하면서도 다 듣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아이들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수줍음을 잘 타서 남 앞에 나서질 못했던 한 아이는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또 한 아이는 옆 친구에게 양보도 하는 배려심을 길렀다.

특히 그는 “참 밝고 싹싹한 아이였는데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며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보니 보살핌을 잘 못 받아 그런 거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안타까웠던 그는 주1회만 방문하던 학교를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해서 동화구연을 가르쳤다. 놀랍게도 그 아이는 동화구연대회에서 상까지 탔다. 덕분에 아이는 자신감을 얻었다.

라 씨는 “요즘 아이들은 똑똑하다”면서 “처음 만나면 선생님 호칭을 부르게 한다”고 또 다른 노하우를 소개했다.

그는 “‘할머니’ 하면 친근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했다”며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좀 더 내 말에 귀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우연한 기회였지만 적성에 맞으면서 보람도 느끼는 일을 발견하게 된 라 씨는 “남편이랑 아이들이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니까 더 신나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

그는 앞으로 영유아 대상 책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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