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랑 꼭두박물관 관장

개인의 힘으로 동숭아트센터를 운영하면서 종종 경영의 한계에 부딪혔고, 고민 끝에 동숭홀에서 영화를 상영했던 시기가 있었다. 500석 규모의 공연장이었던 동숭홀이 공연뿐만 아니라 영화 상영도 가능하게끔 설계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1995년 동숭시네마텍이라는 이름의 예술영화전용관을 따로 열게 되고 영화관의 인지도도 높아지면서, 동숭홀을 순수 공연장으로 환원하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공간의 용도만 변경한 것이 아니라 이와 연계하여 자체 제작한 연극 ‘어머니’를 무대에 올렸다. 동숭아트센터 개관 7주년을 맞아 단순히 공간만 제공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전통연희를 재해석하고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우리 연극의 새로운 길트기’를 시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우리 연극양식 탐색 시리즈’를 마련하고 그 첫 작품으로 선택한 것이 ‘어머니’였다.

동숭아트센터의 첫 창작극인 ‘어머니’는 이윤택과 김명곤이 작가와 연출가로 만나 일제식민지, 해방정국, 한국전쟁, 개발독재의 과정을 거쳐온 한 어머니의 굴곡진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함경도 사투리, 이북 지역의 각종 풍습, 놀이, 노래들을 기본으로 하고 서도소리를 토대로 편곡 또는 작곡한 여러 노래가 극 곳곳에 배치돼 노래극과 비슷하게 전개된다. 당시만 해도 해외 유학파를 중심으로 한 서구 번역극 일변도의 리얼리즘이 연극계를 주도하던 시절이었기에 한국적 창작극인 ‘어머니’는 더욱 의미 있는 시도였다. ‘어머니’에 출연한 두 여배우의 공로 또한 잊을 수가 없다. 노년의 ‘어머니’를 맡은 나문희와 처녀시절의 ‘어머니’ 역할을 한 김민희는 연출이 요구한 캐릭터 그 이상을 보여준 명배우들이었다.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연극 어머니는 ‘거친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왜곡되고 꽃피는지를 볼 수 있고, 어머니라 불리는 한 인간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좋은 평를 받았다.

작품은 크게 성공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뜨거웠고 평론가들의 반응도 좋았다. 1996년 당시 매회 객석 점유율이 110%를 상회하고 37일간 2만 4천 명이 관람했으며 5개 지방 순회공연을 하는 등 총 5만여 명의 관객이 ‘어머니’를 관람했다. 다만, 흥행은 성공했으나 수입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첫 제작공연이 낳은 가장 큰 모순이었다. 가만히 따져 보니 제어되지 않는 예산집행, 스폰서 부족, 제작비용에 비해 짧았던 공연기간 등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충분히 계획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이 먼저 앞서갔고 시행착오로 인한 시간적, 물질적 손실이 막대했다는 것이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어머니’의 현실이었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점검이 뒤따랐던 소중한 경험이 된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수개월 동안 ‘어머니’를 준비하면서 새벽이 되어서야 공연장을 나서기 일쑤였고 극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공연준비 상황을 점검하곤 했다. 관객이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연예술이 시작된다고 믿었기에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 하나까지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민간이 운영하는 공연장의 특성을 살려, 창작극의 산실 역할을 하는 동시에 가난한 예술인들이 자신의 창작세계를 마음껏 펼치고 관객들이 환호하는 공연장을 꿈꾸던 때였다. 그리고 동숭아트센터가 그런 문화공간이 되게 하겠다는 의지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어머니’를 통해 공연장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전통의 현재적 재창조’라는 문화적 신념의 구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다시 한번 작품으로 많은 이들을 울고 웃게 할 그날을 나는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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