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룡 혜천대학교 겸임 언론인

영국의 경제학자이며 철학자인 밀은 “정치에 있어서 거의 상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있다”면서 “그것은 건전한 정치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질서 내지 안정의 정당과, 진보 내지 개량의 정당”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는 대체로 2개 이상의 정당에 의해 의회정치가 행해지고 있다. 이른바 보수적인 정당과 진보적인 정당 또는 혁신적인 정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보수적인 정당과 혁신적인 정당이 서로 대립해 정치를 행함으로써 지나치게 보수적인 면도 억제되고 또 지나치게 급진적인 면도 억제되는,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건전한 정치가 행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4.11 총선에서 우리 국민은 매우 현명한 선택을 했다. 건전한 정치생활을 위해 안정의 정당과 진보성향의 정당에 고르게 표를 준 것이다. 보수적인 집권당에게 겨우 과반의석만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다수당의 전횡을 막고 여와 야가 서로 협심하여 국회를 운영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다.

이에 따라 새로 구성될 국회에 대해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다양한 주문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경제·금융 분야 시민단체들은 새로 출범할 국회에 대해 소비자 정책 방향 전환과 소비자 권리 확대를 위한 제반 시스템 확충, 비합리적인 예산안 처리과정 개선, 경제양극화 해소 등을 요구했다. 또 사회·복지 분야 시민단체들은 국회와 민간단체 간의 파트너십 강화와 아동·노인복지 확대를 주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산적한 문제는 뒷전이다. 권력창출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정치권이 자기성찰로 정치혁신을 도모하기는커녕 분탕(焚蕩)질이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대선 패배의 책임을 물어 당 대표를 사퇴시켰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차기 대권 경선 룰 변경과 관련 내홍을 겪고 있다. 나아가 야당은 친노와 비노, 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각각 당권 및 대권을 위해 골육상잔(骨肉相殘)이다. 정치권이 자기 본분을 잊은 것이 아닌가 하고 심히 우려스럽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 작태는 정치권이 여론조사를 신봉하고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 안철수 원장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안철수 신드롬 태동의 배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안 원장이 갑자기 부상한 이유는 단순하다. 요즘 젊은 층의 경향인 진보의 장점과 보수의 장점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안 원장의 인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동안 제도권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표출된 것으로 분석한다. 국민들의 정치 환멸이 어느 정도 탈 제도권의 새로운 인물인 안 원장에게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국민들로부터 자기 혁신을 통해 구태를 탈피하고 땅에 떨어진 정치권의 신뢰를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이를 태만하여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것으로 잘 알려진 순자(荀子)는 “고기가 썩으면 구더기가 생기고 생선이 마르면 좀벌레가 생긴다”며 “태만함으로써 자신을 잊는다면 재앙이 곧 닥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정치권이 되새겨 봐야 할 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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