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의 날인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종각 보신각 앞에서 전국의 장애인 400여 명이 ‘장애인등급제 폐지’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장애인은 동정 대상이 아닙니다”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어디를 가든 ‘몇 등급이냐’는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닙니다. 그걸 알아야 제가 원하는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거죠.”
“장애 유형이 얼마나 다양한데…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나눈 기준은 납득이 안 갑니다.”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습니다(장애 수급권). 내가 죽으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동사무소 직원분들이 신경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갖가지 사연을 가진 장애인들이 자신의 신체 일부나 마찬가지인 휠체어를 버리고 딱딱한 아스팔트 위를 구르거나 기었다. 장애인의 날인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결의대회’ 참가자들이었다.

이들은 인근에 위치한 보건복지부를 향해 다소 더딘 속도로 행진을 했다. 300m 정도 이동하는데 40여 분이나 걸렸다. 다소 굴욕적일 수 있는 시위였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더 이상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장애인 400여 명은 이런 취지로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날’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마다 장애인의 날이 되면 전국에서 집회나 시위가 열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황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장애인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발달장애인법 제정 등 3대 요구안을 중심으로 정부에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

◆ 장애인등급제 실효성 의문 꾸준히 제기돼

장애인의 인권이 개선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이 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가기가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장애인들 사이에서 장애인등급제는 꾸준히 논란이 돼왔다.

정부는 지난 1988년부터 장애인등급제를 도입, 운영해오고 있다. 장애 정도에 따라 1~6등급으로 나눈 이 제도는 등급에 따라 지원 정도가 다르다. 시행 24년이 지난 지금, 이 제도의 실효성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는 등급을 나눈 것 자체가 인권 침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지체장애인) 상임공동대표는 “1988년 장애인등록을 하면서 우리의 몸을 의료적으로 기계처럼 6등급까지 나눈 것”이라며 “(정부에서는) 형평성 있게 효율적으로 1~6등급까지 (서비스를) 나눠주기 위해서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왜 사람의 몸에 등급을 매겨 낙인을 찍느냐”며 “낙인으로 우리를 잘라내고 경증·중증으로 나눠 ‘몇 푼 더 줄까’하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 개별 장애인의 필요 서비스와 장애등급에 따른 서비스가 일치하는지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등급에 따라 이미 복지 서비스가 결정돼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활동보조서비스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지난 2010년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은 35만 명으로 추산됐다.

남 정책실장은 “활동보조서비스는 23만 명 정도 되는 1급 장애인만 신청할 수 있다”며 “2,3급 장애인도 필요하다는 것인데 1급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남궁은 활동가도 “서비스 신청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현행 제도에서는 장애인의 환경적·개인적 여건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획일적 지원 대신 개인 맞춤 서비스 체계 필요”

장애인계 대부분은 장애인을 구분하는 등급제 유형은 존재해야 한다고 공감하면서도 장애인별 필요 복지서비스 전달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서인환(시각장애인) 사무총장은 “1~6등급으로 나눴지만 사실상 차이가 없다”며 “장애인 등록은 기본적으로 유지하되 굳이 지금과 같이 나눌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오영철(지체장애인) 소장은 “의학적으로 정해져 있는 장애판단뿐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나 근로능력, 환경 등을 고려한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과 남성, 성인과 학생, 장애 분야 등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등급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병준 정책실장은 “현재는 장애인 복지 서비스가 대부분이 감면제도로 지원되고 있다”며 “감면제의 경우는 크게 중·경증으로 나눠 유지하되 개인별로 어떤 서비스가 필요하고 또 어떤 서비스가 적합한지 여부를 판정하는 개인별지원체계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인환 사무총장은 “등급제를 중·경증으로만 구분해 서비스를 정비한다면 서비스 대상을 정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점진적인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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