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과 다른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하기 전의 모습.(사진제공: 동아흥행)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영화 ‘초대받은 사람들(1981)’은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의 역사로 떠나는 110분간의 여행이다.

가톨릭 신자인 최하원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천주교 박해의 역사와 그 속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연인, 자녀를 둔 어머니, 외국인 사제의 상황과 감정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그들이 감내했던 시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때론 너무 잔인하게 묘사되는 고문과 처형 장면은 오늘날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불과 200여 년 만에 그 같은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아 이룩한 한국의 천주교와 기독교의 놀라운 역사를 말이다.

▲ 옥사에 갇힌 정은(왼쪽)을 구하기 위해 항주(오른쪽)가 찾아온 장면.(사진제공: 동아흥행)
◆초기 천주교의 극심한 박해
영화는 이승훈이 중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영세를 받고 돌아오는 1780년대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극심한 박해로 신자들은 숨어서 신앙생활을 해야 했고, 들켜 관아로 끌려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신자들은 오히려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치명’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는 순교를 가리킨다. 그들은 늘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의 씨”라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간다.

가혹한 시련이 계속됐지만 천주교는 오히려 교세가 커져갔다. 어떤 이는 “그렇게 치명을 당했어도 교우가 늘어나니, 이 땅은 선택받은 땅이구나”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특히 신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처형되는 모습이 처절하게 묘사되는데,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연인의 사랑
항주(이영하 분)와 정은(원미경 분)은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항주의 아버지는 재상으로 천주교 박해를 앞장서서 주도했던 인물이었고, 정은의 아버지는 초기 천주교의 선구자였던 정약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주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정은에게서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그 마음을 표현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였던 정은은 신앙 때문에 항주의 마음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은을 찾아다니던 항주는 여러 천주교인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천주교의 가르침을 조금씩 깨달아가며 마음의 변화가 일게 된다.

마침내 정은이 다른 천주교인들과 함께 처형되던 날, 항주 또한 “사학 죄인, 여기도 있소이다”라며 처형장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연모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항주는 그 자리에서 “천주의 가르침을 완전히 다 깨닫지 못하지만 천주 공경하며 영생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영세를 받는다.

이때 외국인 신부는 서툰 한국말로 “우리 축복 받은 오늘 천주의 잔칫상에 한 형제를 더 초대합니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영화의 메시지가 나타난다. 또한 죽음을 맞는 상황 속에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항주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는 장면은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어머니의 애틋한 모정
또 하나의 이야기는 어머니와 그 자녀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기와 함께 옥사에 갇힌 어머니는 아기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해 굶어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밖에서는 다른 자녀가 고문을 당해 비명이 온 옥사를 울렸다. 이에 어머니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난 천주님 모르오”라고 절규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신앙을 부정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풀려난 그는 금세 후회했다.

이에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되고,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기에 큰 아이 또한 울면서 어머니를 보내준다. 그리고 어머니가 참수 당하기 전, 아이들은 망나니를 찾아가 아껴서 모은 쌀과 돈을 건네며 “우리 어머니 안 아프게 단칼에 쳐서 하늘나라 보내주세요”라고 울면서 부탁한다.

어머니가 처형되던 날엔 처형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어머니가 또 배교할까봐 울음이 터져 나오는 입을 막는 모습은 더욱 가슴 아프게 전해온다.

◆“착한 목자는 양떼 위해 목숨을 바친다”
또 외국인 신부의 모습도 비춰진다. 관아에서는 외국인 신부가 있는 곳을 발고하라고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했지만 신자들은 “남을 해하지 말라”는 가르침에 따라 끝까지 함구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외국인 신부는 다른 신자들이 피하라고 하는 권유에도 “착한 목자, 양떼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이 땅의 양떼들, 외국인 목자 위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자수하겠습니다”라며 목숨을 내놓는다.
제20회(1981년)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초대받은 사람들’은 불과 200여 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낯설고 매우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는 그만큼 한국 천주교, 기독교가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며, 이 같은 역사의 터 위에 우리나라 기독교가 굳건히 세워졌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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