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지연 기자] 쌀가공식품 시장이 팽창하고 있다. 남는 쌀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온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이기도 하다.

이달부터는 ‘쌀가공산업 육성 및 쌀 이용 촉진에 관한 법’도 시행에 들어가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했던 업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형성된 쌀가공식품 산업의 취약성과 불안정한 쌀 공급 문제를 보완할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 ‘밥그릇’ 떠난 소비자 입맛


쌀은 전통적으로 ‘밥’이라는 식사 개념으로 이용됐고, 밀가루와 달리 가공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의 쌀 소비량이 계속 줄어들면서 쌀가공의 필요성이 심각하게 대두됐다.

빵이나 면 같은 밀가루 음식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채소·육류 등 대체식품이 증가하면서 식습관이 바뀐 탓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이미 2006년부터 한 가마니(80㎏)에도 못 미쳤다. 이마저도 매년 줄어들어 2011년에는 한 사람이 71.2㎏의 쌀을 소비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밥 두 그릇을 채 먹지 않는 셈이다.

여기에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으로 들어오는 수입쌀은 전년보다 매년 2만 톤씩 늘어난다. 2005년에 22만 톤을 들여왔다면 2014년에는 42만 톤을 들여오는 것이다. 결국 한 해 72만 톤의 적정 재고량 이외에 남아도는 쌀의 활용방안이 중요해졌고, 정부는 쌀가공산업 육성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그 중 하나는 가공적성이 좋지 않은 쌀을 활용하기 위해 관련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선 것. 일례로 새로 개발한 쌀품종 ‘희망찬’과 ‘보람찬’은 각각 가래떡과 빵·과자용으로 적합하다. 보람찬벼는 반죽이 쉽고 맛이 좋으며, 같은 면적에서 다른 품종보다 많은 양의 쌀을 거둘 수 있어 가공식품의 원가도 낮출 수 있다. 정부는 이 같은 가공용 쌀 생산단지를 밥쌀과 별도로 조성해 지원하고 있다.

또 2009년부터는 페스티벌을 열어 떡볶이를 주력품목으로 부각시켰다. 업체들 또한 소비자들이 건강한 먹거리에 큰 관심을 보이자 이를 겨냥해 쌀막걸리를 대표적인 인기품목으로 만들었다.

농림수산식품부 식량정책과 송광현 서기관은 “밀가루를 남는 쌀로 대체하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건강과 다이어트 등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킬만한 새로운 쌀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쌀가공산업 육성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 “커지고는 있지만”… 불안한 쌀가공시장
정부는 이와 함께 가공업체에 쌀 가격을 낮춰 공급함으로써 가공식품 시장의 팽창을 이끌어냈다. 밀가루보다 3~4배 비싼 쌀 가격 때문에 가공업체가 제품생산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정부는 80년대부터 이미 쌀가공지원책을 썼지만 잠시 흥하는 듯 했던 쌀가공업은 정부의 임기응변적 대응으로 90년대 후반 찬바람을 맞는다. 쌀 재고량이 줄어들자 정부가 가공용 쌀의 공급량을 줄이고 가격을 높이는 통에 업체들이 갑작스런 변화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900개가 넘었던 가공업체 수도 2000년 무렵에는 400개 이하로 급감했다. 2001~2002년에 풍작이 들어 다시 재고가 늘자 정부의 지원이 늘어나고 가공업체 수는 다시 600개를 웃돌았다.

농식품가치연구소의 장인석 소장은 “정부가 쌀가공식품을 하나의 ‘산업’으로 육성한다고 하면서도 체계적인 육성책을 펴기보다는 쌀 재고가 늘면 지원을 늘리고 재고가 줄면 지원을 거두는 임기응변식의 대응을 했다”며 “그 결과 쌀가공산업의 취약성과 불안정성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현재도 영세한 업체들과 취약한 산업 구조는 여전히 문제다. 가공산업은 정부의 저가 쌀 공급량에 의존하는 비중이 큰데, 최근에는 공급량이 대기업에 편중된 모습이 두드러진다.

농식품가치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공급한 쌀 23만여 톤 중 66%를 62개 업체가 사용했다. 전체 850여개의 쌀가공식품 업체 중 7%에 불과한 곳에 집중된 것이다. 지역적으로도 서울, 경기, 인천, 충청도 등 4개 지역에 집중돼 있어 각 지방의 지역경제와 맞물려 활성화되지 못하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안정적인 가격에 쌀을 공급받지 못하는 문제도 업체에는 해소되지 않는 불안감으로 남아 있다. 정부가 저가로 공급하는 2008년산 쌀은 올해 10월까지만 공급이 예정돼 있고 재고량이 예상보다 일찍 소진될 경우 10월 이전에 공급이 끊길 수도 있다.

현재 정부가 제공하는 재고미 가격은 2008년산부터 2011년산까지 차등화 돼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2008년산 국산쌀이 40㎏에 1만 4200원, 2010년산은 6만 4000원 선, 2011년산은 8만 50원이다. 식품 종류에 따라 묵은쌀을 쓸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2008년 쌀을 공급받은 뒤 도정·제분 등의 가공단계를 거쳐 쌀가루로 사용한다.

그러나 공급이 끊기면 업체들은 2009년 이후의 쌀을 조달하면서 갑자기 높아진 가격 때문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공급이 언제 끊길지 정확히 예측하기도 힘들다. 업체 관계자는 “재고가 없다고 하면서 그 이듬해 생산된 쌀을 제공하는데, 가격이 갑자기 오르니 제품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며 정부정책의 개선을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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