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 학예연구사

정릉은 유네스코로부터 인류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세계유산이다. 동시에 보통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만들어 가는 도심 속 생활 공간이다. 이 한 동네를 놓고 요즘 문화유산의 보존을 우선시 하는 사람과 좀 더 나은 집을 가져보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상반된 의견을 내세우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종교건축, 전통가옥, 역사도시 등과 같이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하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소위, ‘살아있는 건축문화유산’은 보존과 활용, 또는 보존과 개발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공적 자산으로서 가능한 한, 외형과 가치가 최대한 보존되어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요구에 맞추어 변형되어야 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속성이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킬 때, 어느 한쪽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으면서, 양측이 원만하게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 그 해법을 정책과 제도적 측면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선 보존 정책적 측면에서 볼 때, 문화유산이 지닌 가치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가치 중심적인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하는 당위성이 문화유산이 지닌 다양한 가치에 있으며, 가치를 최대한 지키는 것이 보존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문화유산의 정책과 관리를 담당하는 잉글리쉬 헤리티지는 ‘공적 가치(Public Value)’라는 사회학적 용어를 문화유산에 끌어들이면서, 보존을 물리적인 형태가 변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행위로 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문화유산이 지닌 가치에 대한 변화를 관리하는 행위로 보는 관점을 도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일반 대중과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는 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실무에 적용할 수 있도록 문화유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과 절차,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변화를 관리하는 방법, 가치를 최대한 지킬 수 있는 보존원칙과 절차를 담은 정책서를 발간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문화유산의 개별적 가치와 중요성을 서술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보존을 위해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보다 명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보존과 개발 간의 의견대립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또한, 제도적 측면에서 보존, 활용, 주변의 개발과 같은 문화유산과 관련한 사회적 행위과정에서 의견대립을 미리 방지하거나, 이미 수면 위로 떠오른 갈등을 조정하여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합의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경우, 국보급 문화유산이나 매우 심각한 사안은 문화재위원회에서 다루지만, 그 외의 모든 지정문화유산의 현상 변경 신청서에 대한 허가 여부는 시청의 도시계획과에서 결정한다. 하지만, 유산을 소유한 단체가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에 도시계획과의 담당자와 협의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서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신청서에 대한 의견 수렴과정에 지역의 문화유산전문가로 구성된 비영리단체와 일반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며, 동시에 개인이나 일부집단의 기본권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보존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사안별로 문화유산의 공적가치와 개인의 권리에 대한 비중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이 국민적 책임이자 관심사가 된 지금, 보존과 활용, 그리고 보존과 개발을 적대적 관계가 아닌 공존의 관계로 바꾸려면, 정부와 대중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대중에게 문화유산의 가치를 이해시키고, 의사결정과정에 건설적인 방향으로 참여할 수 있는 보존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일반 시민들은 문화유산이 지닌 공적인 가치를 지킬 수 있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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