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무거운 느낌을 주는 宗敎. 그러나 종교를 배제하고는 ‘인류의 문화’를 논할 수 없다. 인간은 왜 종교를 갖게 되었고, 시대마다 종교는 어떤 특성을 지녔던 걸까. 알듯 모를 듯 애매하지만, 문명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종교, 그 긴 이야기를 교과서를 중심으로 끊어서 알기 쉽게 엮어가고자 한다.

첫 이야기는 우리나라 종교이야기로, 청동기시대 고조선의 ‘단군신화’를 통해 당시의 종교형태와 신화 속에 숨겨진 사회 문화적 특성을 짚어본다. 단군신화처럼 조금은 황당하게 읽히는 건국설화에도 실상은 수많은 시대상이 담겨있다.

 

▲ 고조선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천지일보(뉴스천지)

청동기시대 ‘단군신화’

단군, 무려 1908세?… “신인합일 문화 창조신화”

하늘, 시련 이긴 곰 택해
동물숭배, 인내하는 민족성 담아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역사 교과서에 국가형태로 처음 등장하는 나라 ‘고조선’은 청동기시대에 세워졌다. 고조선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 민족은 하느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내려와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된 곰과 결혼했다는 ‘조금 황당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럼 우리 조상이 ‘곰’인 걸까. 물론 대부분의 성인들은 ‘곰’이 비유라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국모를 ‘곰에서 환생한 여인’에 빗댄 이유는 무엇일까.

‘단군신화’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 위서(魏書)와 우리나라 고기(古記)를 인용한 13세기 말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史)에 있다. 이밖에 고려 후기 이승휴의 ‘제왕운기’, 조선 초기 권람의 ‘응제시주’ 및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실려 있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위서로 간주하는 ‘규원사화’ ‘단기고사’ ‘조대기’ ‘태백일사’ ‘천부경’ 등에서도 단군신화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것은 삼국유사의 ‘고기(古記)’ 내용이다.

◆환인-환웅-단군 ‘천손민족’

단군신화의 내용을 풀어보면 먼저 위서(魏書)에는 단군 임금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썼으니 중국 요(堯)와 같은 시대(BC 2333)라고 기록돼 있다. 고기(古記)에서는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할 때, 환인이 그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보아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할 만하다 생각해 그들에게 천부인(天府印) 3개를 주어 다스리게 했다.

이에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신시(神市)를 열고 여러 신과 세상을 다스렸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인내한 곰 ‘사람’… 호랑이, 여전히 ‘짐승’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곰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해 3·7일(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호랑이는 이것을 참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단군 1500년 치리, 나이 1908세

단군왕검이 당고(唐高:중국 3황 5제 중의 요임금을 말함) 즉위 50년 뒤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弓忽山:弓자 대신 方자를 쓰기도 함)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했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의 호왕(虎王:주의 무왕을 말함)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왕에 봉하고, 자신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책별로 다른 내용의 단군신화

이 같은 내용으로 큰 골자는 함께하지만 책별로 다른 내용이 보이기도 한다. 제왕운기에서는 단군이 환웅의 손녀와 박달나무 신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있으며, 단군의 단도 제단 단(壇)이 아닌 박달나무 단(檀)을 썼다. 단군의 재위년수도 1038년으로 기록했다. 응제시주에서는 단군이 직접 하늘에서 내려와 고조선을 개국한 것으로 돼 있다. 규원사화에서는 단군을 단국이라는 나라의 군주로 보고 47대 단군의 이름과 함께 구체적인 치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단국은 영토가 넓고 문화도 상당히 발달한 국가로 묘사되고 있다.

단군은 우리나라의 국조 신앙으로 받들어졌다. 일부 종교학자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 등 역사적인 전통에 힘입어 대종교가 출범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극과 극으로 대치하는 줄만 알았던 기독교에서도 단군신화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고, 신학의 한 주류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1911년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들어온 레널즈 선교사는 단군신화의 내용을 구약 성경에 나오는 노아 홍수 이전에 존재했던 하나님의 아들들 사이에 태어난 고대 네피림 설화와 유사한 것으로 파악했다. 1960년대부터 한국 토착화 신학을 주장하고 91세의 나이로 최근까지 활발한 특강을 펼친 유동식 신학박사의 주장도 눈에 띈다.

그는 단군신화를 통해 한국인의 심성에서 가장 근본적인 종교성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고유 신앙인 ‘풍류도’를 여기에서 찾았다. 그는 단군신화를 통해 하나님이 강림하시는 것을 믿는 강림신앙을 주장했다. 또한 곰이 사람이 되는 것에서는 자기 자신을 부정함으로 새로운 존재로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체험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했다. 아울러 환웅과 웅녀의 결합은 신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신인합일을 통해 ‘문화의 창조신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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