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순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 까지도 않은 귤처럼
칼도 대지 않은 채 옷을 훌 훌 벗어버리고
길들여 지지 않은 망아지처럼 달려간다.

아라바에서 중국 저 흑룡강 산골짝까지
지칠 줄 모르고 걸어온
소금쟁이 당나귀의 헛웃음처럼
너를 향한 그것이

짜디짠 소금물이
아랫도리를 적신다.
내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길섶에 누워
망가지는
잡풀이 된다.
신이 그때는 눈을 감아 주시겠지
하얗게 피어난 배꽃들도
그때는 잠시 잠을 자겠지.

여수 순천 달리는 고속도로
온 통
너의 유혹에 찢긴
내 속옷거지들이다.
온 통
연분홍 꽃으로 깔린
처녀의 이불이다.

갑자기 허연
조팝 꽃들이 비웃으며
튁튁 튀겨가며
아무도 보지 않는
이불 속을
몰래 훔쳐본다.

 

-약력-
서정문학 시 부문 등단, 한국서정작가협회 회원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 치유선교학고 졸업(문학석사)
前 재가봉한글학교 교사, 現 한국어강사

-시평-
만약에 계절마다 운명이 있다면 봄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운명일 것이다. 꽃 펴야 잎 나고, 잎 나야 꽃 피는 생명력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얼마나 설레이는 일인가? 첫 연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다 까지도 않은 귤처럼/칼도 대지 않은 채 옷을 훌 훌 벗어버리고/길들여 지지 않은 망아지처럼 달려간다.’는 1년에 단 한 번 찾아오는 대자연의 깊고 오묘한 봄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나를 이해하여 주는 좋은 친구,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주는 착한 사람을 찾아 옷 벗어 던지고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인간적인 풍상이 아름답다.

제 4연 ‘여수 순천 달리는 고속도로/온 통/너의 유혹에 찢긴/내 속옷거지들이다./온 통/연분홍 꽃으로 깔린/처녀의 이불이다.’에서는 차창을 통해 따뜻한 속삭임과 달콤한 향기가 들어온다. 봄이면 꽃으로 다시 피어나고픈 유혹, 나무와 풀 그리고 새와 나비로 태어나고픈 유혹, 그 유혹들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여수 순천 고속도로를 달리니 봄이 눈앞에 펼쳐진다. 진달래와 벚꽃 그리고 목련과 조팝꽃 등 대지는 온통 꽃천지다. 보이는 것마다 가족 같고 애인 같은 봄날의 풍경에 홀딱 넘어가고 싶다.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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