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 (현충사 제공)

“신하된 자, 임금을 섬김에 忠情만 있을 뿐”

[천지일보 충청=김지현 기자] 이순신(李舜臣) 장군 탄생 제467주년을 맞는 ‘4.28 충무공 탄신일’이 다가왔다. 올해는 임진왜란 발발 420주년, 즉 60갑자가 일곱 번째 돌아오는 7주 갑 임진년이라는 시기적 의미도 특별한 때이다. 치열했던 전쟁과 혼란 속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쳐 희생하며 영원히 남을 역사를 기록한 이 충무공!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함께 그가 남긴 교훈은 아직 우리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순신 장군과 그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한 축제와 행사가 전국의 이곳저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충무공의 얼을 되새기고 그 정신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는 지혜를 얻고자 아산 현충사를 찾았다.

▲ 현충사 본전. (현충사 제공)

아산 현충사, 충무공의 얼이 서린 곳
“모반의 날이 새어 산도 물도 떨던 그날/ 백의의 종군 천 리 어인 발을 떼셨을까/ 한산섬 거센 물살이 님의 넋을 헹굽니다./ 풀 이슬에 삶을 갈던 백성들을 생각하며/ 하늘 땅 휘어잡고 울부짖던 그 함성/ 현충사 넓은 뜨락에 가득 고여 흐릅니다./ 그리움 하나 없이 함선 위에 바친 생애/ 자국마다 고인 충절 하늘에 와 닿았거니/ 이 한밤 고요를 깨고 헌신하는 장군님/ 가신 지 4백 년에 님이 다시 찾아와서/ 주잔으면 안된다고 다시 세워 나가라네/ 아무도 가누지 못할 눈시울을 적십니다.”
시조시인 김동직(金東稙) 씨가 이 충무공을 읊은 한(恨) 섞인 노래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 중 전라 좌수사와 삼도 수군통제사로 조선 수군을 이끌고 일본 수군을 무찔러 나라를 구한 ‘우리 민족의 성웅(聖雄)’이다.

이 같은 이순신에 대한 한(恨)과 얼이 서린 곳 ‘현충사(顯忠祠)’는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혼인해 살던 옛집과 공을 기리는 사당이 있는 곳이다. 충무공은 이곳에서 10년간 무예를 연마해 서른두 살 되던 해(1576년, 선조 9년)에 무과에 급제했다. 이후 관직생활 가운데 늘 맡은 바 책임을 다해 주위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현충사 입구에 있는 기념관 1층은 제1전시실 ‘임진해전사’와 제2전시실 ‘충무공 이순신’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지하에 정보검색실과 4D 영상실이 갖추어져 있다.

입구의 충무문(忠武門)은 현충사의 정문(正門)으로 사당의 외부 경역을 구분하는 외삼문(外三門)이며 이 문의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돼 있다. 이 문을 거쳐 탁 트인 잔디 언덕과 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정려(旌閭)’가 보이고 좀 더 들어가 왼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구본전(舊本殿)’이 나온다.

‘정려’란 충신, 효자, 열녀가 났을 때 마을 입구에 세워 임금이 하사한 편액(扁額)을 걸어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본받게 했던 곳이다. 현충사에 있는 정려는 충무공과 조카 완, 4대손 홍무, 5대손 봉상, 8대손 효자 제빈 등 다섯 분의 편액이 모셔져 있다.

‘구본전’은 1932년 중건 당시 현충사 본전으로 현재 본전이 신축되면서 그 이듬해 1968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여기서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충무공 옛집과 활터’가 나오는데 이곳은 충무공이 혼인해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아 살았던 옛집이다. 충무공은 21살 결혼했는데 부인은 보성군수 방진(方震)의 무남독녀였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처가가 충무공의 본가가 됐다.

집 뒤편에 있는 가묘에 ‘충무공 신위’가 모셔져 있고 지금도 해마다 이곳에서 기제사를 모시고 있으며 이 활터는 충무공이 직접 활쏘기를 하던 곳으로 현재 은행나무 2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충무공은 임금이 북쪽에 계시기 때문에 항상 남쪽을 향해 활쏘기 연습을 했다고 한다. 활터를 둘러싼 방화산의 능선은 장군이 말을 타던 곳이다.

중앙에서 홍살문을 지나 들어가면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본전(本殿)이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형식의 콘크리트 한옥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 거북선 모형. (현충사 제공)

충무공 정신 ‘몸을 헐어 나라 건질 도리’
어허 이때가 어느 때인데/ 저 이강(李綱)은 가려고 하는가./ 가면 또 어디로 가려는가./ 무릇 신하된 자로서 임금을 섬김에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요, 다른 길은 없다./ 그때야말로 종사의 위태함이 마치 터럭 한 가닥으로 천만 근을 달아 올림과 같아 정히 신하된 자는 몸을 버려 나라의 은혜를 갚을 때인데 그럼에도 가겠다는 말은 진실로 마음에 생각도 내지 못할 말이거늘./ 하물며 어찌 입 밖으로 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 내가 이강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몸을 헐어 피눈물을 흘리며 간담을 열어 저치고서 사세가 여기까지 왔으니 화친할 수 없음을 밝혀서 말할 것이요,/ 아무리 말하여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면 거기 이어 죽을 것이다./ 또 그렇지도 못한다면, 짐짓 화친하려는 계획을 따라 몸을 그 속에 던져 온갖 일에 낱낱이 꾸려가며, 죽음 속에서 살 길을 구한다면, 혹시 만에 하나라도 나라를 건질 도리가 있게 될 것이거늘, 강의 계획은 이런 데서 내지 않고 그저 가려고만 했으니, 이것이 어찌 신하된 자로서 몸을 던져 임금을 섬기는 의리라 할 수 있겠는가.”

이 ‘독송사’는 난중일기 정유년 10월 8일 일기 다음에 적혀있는 독후감으로 충무공이 송나라 역사를 읽고 나서 쓴 글이다. 송나라가 금나라에 침략을 당할 지경에서 송의 정승 이강이 임금의 뜻이 자기주장에 맞지 않는다 하여 가버리겠다고 한 말에 대해 충무공이 비판한 내용으로 충무공의 충절과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충무공의 훌륭한 정신에 대해 대표적으로 오자정신(五自情神)이나 오대정신(五大情神)을 말하고 ‘멸사봉공의 애국정신, 창의와 개척정신, 유비무환의 정신’ 등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5대정신이란 “제힘으로 사는 정신, 정의를 목표로 삼는 정신, 국토를 사랑하는 정신, 국민과 같이 가는 정신, 새 길을 뚫고 가는 정신”을 일컫는다.

현충사 김갑륭 관리소장 인터뷰 - 김갑륭 소장이 말하는 ‘충무공 정신’

▲ 김갑륭 현충사관리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아산 현충사 내 현충사 관리소 김갑륭 소장은 “충무공은 기본적으로 유교적 교육을 받고 이를 충실히 실천했다”면서 “유교적 정신의 기본인 효제정신에 투철했으며 그 외로 인간적으로 본받을 만한 여러 가지 훌륭한 정신과 덕목을 갖춘 분이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좀 다른 각도에서 충무공의 정신을 정리해본다면 ‘철저한 준비정신, 엄격한 자기 관리, 정의감, 지극한 애국심과 민족애, 효도 외에도 민주적 리더십과 자주정신, 주체의식, 개척정신 등을 꼽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충무공에 대해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할 것은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지식인이라는 점으로 무인이었지만 문인을 압도할 정도로 항상 선비와 같이 병서뿐 아니라 사서오경 등 많은 책을 섭렵했다.

경영, 문학, 행정 등에 정통했다”면서 “특히 난중일기에서 보듯이 철저한 기록정신과 자기 성찰 등은 충무공이 공적을 이룰 수 있었던 본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충무공 탄신일을 기념한 축제와 행사 때만 이순신 장군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항상, 이 같은 충무공의 여러 가지 위대한 정신과 덕목을 우리 모두 본받아 생활 속에 적용하고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이곳 아산 현충사에 깃든 이 충무공의 영혼이 우리 후손에게 가장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하루하루 삶 속에서 충무공의 정신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을 살려 실천한다면 어떠한 난관도 다 이겨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말을 맺었다.
 

현충사 ‘다례’와 궁도대회‧기획전 ‘역사 속 이순신, 살아난 행사들’
28일 현충사 본전에서는 문화재청장과 현충사 관리소장, 충남도지사, 육해공군 참모총장, 국회의원, 전국유적관리기관 대표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다례’ 행사가 개최된다.

고래(古來)로 국가에서 거행한 제례 중 종묘 제향과 선원전의 다례가 있었는데 다례는 어전에 국왕의 초상화를 모시고 국왕의 탄신일과 원단(元旦)에 국왕이 생존했을 때와 다름없이 섬기는 행사이다.

현충사 본전에는 이충무공의 영정을 모셨고 4.28은 공의 탄신일이므로 선원전의 다례에 준해 공이 살아있는 것과 같이 다례를 거행하는 것이다. 헌화 시 조화(弔花)가 아닌 생화(生花)를 사용한다.

다례는 현충사 창건(1706년) 이후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시까지 지방민들과 아산지역 유림에 의해 춘추 제향으로 모셔왔으며 일제 강점기인 1932년 6월 5일 중건 이후에는 중건을 주도했던 이충무공기념사업회가 주축이 되어 해방 이후에도 매년 4월 28일(공의 탄신일인 음력 3월 8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 공의 탄신기념제전을 거행했다.

한때 6.25와 4.19 및 5.16 등 사회혼란에 따라 제전이 차츰 해이해졌으나 아산교육청, 아산시, 충남도 등의 주관으로 매년 지역주민과 유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전을 계속해 왔다. 그 후 1962년 제417회 탄신일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국가원수로 처음 참석한 이후에 매년 정부에서 주관해 행사를 개최했다.

또 다례행사 전후에는 현충사 경내 활터에서 ‘제51회 대통령기 전국 시․도대항 궁도대회’가 열린다. 이날부터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역사 속의 이순신’이란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는데 이 전시의 내용은 이종학 기증자료(근·현대)와 충무공 관련 화폐·우표, 영상자료 등으로 차기 기획전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된다.

아산시 ‘이순신 축제’
아울러 아산시 주최로 열리는 ‘제51회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는 27~29일 ‘아산! 생명의 물, 이순신을 키우다!’란 주제로 펼쳐진다. 이 축제는 ‘내가 이순신이다’ ‘Come 溫(on) 아산’이라는 슬로건 아래 온양온천역 광장을 중심으로 한 시내에서 다채롭게 진행된다.

이 축제 가운데 이순신 장군 출정 및 퍼레이드, 무과 재연 등 퍼포먼스, 무과 체험과 조선수군 병영문화체험 등 체험행사, 아산지역 예술문화단체의 연합 주제공연, 충무공 해상대전 e-sports 대회, 428 스마트 영화제(아마추어 동영상 제작 공모전)가 열린다.

특히 축제현장에서 대규모 물놀이 판이 벌어질 ‘온천수 난장’은 온천문화도시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예정이며 축제가 열리는 3일 동안 김장훈, 이승환, 부활, 씨크릿, 크라잉넛, 울랄라세션 등 인기가수 초청공연으로 축제 열기를 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더불어 지역 내 청소년과 아마추어 시민이 참여하여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스프링콘서트’나 ‘횡단보도 족구대회’ 등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하고 호흡할 수 있는 참여형 축제가 벌어져 시내 관광과 시내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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