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민단체 "일제때 강탈 문화재…환수 추진"

(도쿄=연합뉴스) 일본 국립박물관이 과거 일제가 강탈했을 개연성이 큰 조선 왕실의 투구와 갑옷 등을 소장하고 있다고 공식 인정함에 따라 환수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미타 준(富田淳) 도쿄국립박물관 학예연구부 진열품 관리과장은 23일 오후 일본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 시민단체와 간담회에서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익선관(翼善冠.왕이나 세자가 평상복으로 정무를 볼 때 쓰던 관)과 투구, 갑옷 세트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측이 익선관 등을 조선 왕실의 물품이라고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 왕실의 물품은 일제강점기에도 엄격하게 관리됐다. 이 물품이 일본 측에 기증 등의 형식으로 넘어갔다는 기록이 없는 만큼 강탈되거나 불법적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5년에 발행한 '오쿠라 컬렉션 한국 문화재 목록'에서도 익선관과 투구 등에 대해 "왕실의 최고위층, 다시 말해 왕이나 왕세자가 착용한 물건임을 짐작게 한다"고 추정한 적은 있지만, 일본 측이 이를 조선 왕실의 물건이라고 인정하거나 실물을 공개한 적은 없다.
도미타 과장은 "익선관과 투구 등이 고종이 쓰던 물품이냐"는 질문에는 "즉답하기 어렵다"고 피해갔지만, 한국 시민단체의 특별관람 요구에는 "신청하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 물건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업가 오쿠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가 수집한 '오쿠라 컬렉션' 1천100여 점에 포함된 것이다. 오쿠라의 아들이 1981년 7월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한국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오쿠라가 식민지 조선에서 대구전기주식회사를 운영하면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문화재를 빼돌렸다며 오쿠라 컬렉션을 반환하라고 요구했지만, 일본은 당시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한국 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 스님)는 특히 오쿠라 다케노스케가 1964년 숨지기 직전에 작성한 '오쿠라 컬렉션 목록'에 고종이 쓰던 물건이라고 적어놓은 익선관 등이 불법적으로 유출됐을 공산이 크다며 반환을 요구해왔다.

혜문 스님은 "일제는 한일강제합방 이후 조선 왕실과 관련된 사무를 담당하는 '이왕직(李王職)'이라는 기관을 만들었다"며 "이왕직이 익선관 등을 기증했거나 반출했다는 기록이 없는데도 이 물건이 오쿠라의 손을 거쳐 도쿄 국립박물관에 있는 이유는 강탈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조만간 황사손(황실의 적통을 잇는 자손)인 이 원 대동종약원 총재 등과 함께 도쿄국립박물관에 특별관람을 요청하는 등 본격적인 환수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 간담회에 동행한 일본 국립문화재기구 관계자는 도쿄·교토·나라·규슈 등 일본 내 4개 국립박물관에 한반도에서 유래한 문화재가 4천422점 소장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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