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한 학부모가 최근 개정된 교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동남아인 부정적으로
백인은 긍정적으로 이주여성 무능력하게
편견 심어줄 소지 커

[천지일보=김예슬․장수경 기자] ‘눈이 크고 얼굴이 까만 나영이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고, 알림장을 못 읽는 준희 엄마는 베트남에서 왔고, 김치 못 먹어 쩔쩔매는 영호 아저씨 각시는 몽골에서 시집왔고(초등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 2012 개정판)’

최근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개정 교과서에도 국제결혼한 이주여성과 가정, 외국에서 살다온 전학생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수록됐다. 이는 다문화적으로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교과서에 반영된 것이다.

초등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다문화를 접하도록 한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나 그 내용적인 면에서 편견을 심어줄 만한 요소가 많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교과서에 담긴 내용이 주변에서 일어날 만한 소재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인물이 동남아시아인이고, 특히 그 내용을 보면 초등학생이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향된 이미지를 가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지가 지난 5~6일 서울 소재 서점을 통해 최근 개정된 교과서를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국어’ ‘생활의 길잡이’를 비롯해 다양한 교과서에서 다문화와 관련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이주여성과 다문화 가정이 겪는 어려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마을에서 발생하는 갈등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내용과 관련해선 동남아인이, 길을 묻는 유학생 등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대목엔 백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사)이주민과 함께 부설 다문화인권교육센터’ 정정수 소장은 “개정 교과서에는 국제결혼한 이주여성과 가정, 외국인 전학생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이 수록됐다”며 “그런데 이주여성 학부모들을 소극적이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등 부정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센터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대상 개정판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4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있는 ‘걱정마’라는 시에는 ‘눈이 크고 얼굴이 까만’ ‘김치 못 먹어 쩔쩔매는’ ‘말이 안 통해’ ‘우리 동네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등의 표현이 담겨 있었다.

또 생활의 길잡이 3학년 2학기 교과서에는 산업 기계를 다루는 이주노동자는 동남아시아인이었고, 외국인 유학생으로는 백인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 같은 편견과 달리 실제적으로는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외국인 중 아시아 출신이 백인보다 훨씬 많다. ‘2010년 출입국 외국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에 유학 입국한 10만 6961명 중 아시아 출신 외국인 유학생은 9만 8825명(92.4%)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교과서 속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센터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85%는 아시아인이다.

그런데 교과서 속 외국인 관광객 사진을 포함한 삽화 22장 중 1장에서만 동남아인이 나왔고, 21장에는 백인이 등장했다.

이는 교과서 집필자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나타난 문제로 분석된다.

정 소장은 “이주 가정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교과서가 집필됐다”면서 “교과서 집필 전문가도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교과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재다. 그만큼 신중하게 제작해야 한다”면서 “언어나 생김새가 달라 소수자로 따돌림 당하고,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보다는 당사자들의 실제 생활과 관련된 글과 그림을 게재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영남대학교 다문화교육원 김민정 팀장은 “일부 교과서를 보면 ‘아시아 계통 친구는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 같고, 백인 친구는 잘 사는 것 같고’라는 표현이 들어있다”면서 “오히려 교과서를 통해 인종차별이 부각되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서점 교과서 코너에서 만난 시민 오현주(51, 여, 서울 강북구 삼각산동) 씨는 “교과서에서조차 인종차별 내용이 많다는 것에 공감한다. 어떻게 보면 기존 편견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게 될 수 있다”면서 “차라리 아이들에게 ‘다른 나라 출신 아이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내용을 다룬다면 서로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구(21, 남, 인천) 씨는 “교과서를 보면 동아시아와 관련된 내용으로 다문화 이미지나 글이 편중된 것 같다”면서 “아이들이 다문화를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교과서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이미지를 통해 주입식으로 가르치기보다 체험하고 이해하는 현장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다문화 관계자들은 교과서에서 다문화 내용을 다루는 것은 필요하지만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은 수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 소장은 “개정 교과서의 가장 큰 특징은 국제 결혼한 이주여성, 다문화 가정의 자녀에 대한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이러한 소재는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의미 있고 계속 다룰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개정된 교과서는 이주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보다는 불필요한 편견과 오해를 양산할 우려가 높다고 본다. 소재 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주민 당사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과서 테두리에서 벗어나 다양한 다문화 체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민정 팀장은 “다른 문화적인 요소로 접근하기를 바란다. 예로 유학생이 그 나라 문화를 소개해주거나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의 모습을 다뤄줘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부모의 역할도 강조했다. 김 팀장은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유치원생의 경우 다문화 학생이라고 차별하기보다 자기 또래 친구들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부모회 등에서 부모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내 친구가 나와 다르다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다문화 가정 친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면서 “‘그 친구네 갔는데 음식문화는 어떻더라’ ‘친구 어머니는 이런 것을 해줬다’ ‘이중언어를 쓰는 것도 괜찮더라’ 등의 내용을 다루는 게 학생들에게 친근함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는 교과서를 집필하는 데 있어 인종·직업·성별 등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유대균 교과부 교과서기획팀연구관은 “인종이나 직업·성별에 대해 차별성을 두지 않는 게 교과부의 기본 원칙”이라며 “군인은 다 남자가 한다거나 설거지는 모두 여성이 한다는 내용은 이미 오래전에 개선했다. 다문화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유 연구관은 “초중고 전체 교과서는 4500여 권에 달한다. 교과서가 만들어지면 교과부에서 수차례 검토를 한다”며 “전국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적합한지, 그 내용과 그림을 현장에서 직접 검토한다. 이 때문에 교과서 내용을 항상 신경 써 집필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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