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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갈아타기 너무 힘들어… 돌아오는 길 분노 솟구쳐”

[천지일보=이솜 기자] 지난 3월 국토해양부는 2016년까지 시내버스의 41.5%를 저상버스로 바꾸겠다는 제2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50%의 저상버스를 도입하겠다는 발표에서 현저히 떨어진 수치다. 이에 분노한 장애인들은 전국 50여 개 버스정류장에서 동시다발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 외에도 최근 이동권과 문화권에 대한 장애인들의 시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본지 기자는 이처럼 장애인들이 분노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동권’에 대한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3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수동휠체어를 대여해 직접 거리로 나섰다.

첫째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평소 회사와 5분 거리인 서울역까지 20분 만에 도착했다. 조금이라도 경사가 있는 거리에서는 자꾸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휠체어를 주체할 수 없어 몇 번을 후진한 후에 다시 전진했기 때문이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더 문제였다. 대합실에서 승강장까지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다는데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위 시민들과 서울역 관계자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장애인용 개찰구를 지나려는데,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던 장애인용 개찰구의 철문이 너무 무거웠다. 결국 한 손으로 철문을 밀고 한 손으로는 수동휠체어를 운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또 문제다. 엘리베이터 사이가 너무 좁아 휠체어를 운전할 시에는 손이 다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 사이를 양손으로 짚고 밀어서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엘리베이터 공간이 너무 좁아 뒤에 있던 장애인은 타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바로 휠체어 이용 칸이 나온다. 대합실에서 승강장까지 무려 20분이 걸렸다.

종로3가역에 있는 영화관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는데,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틈새가 매우 커 도저히 갈 수 없어 보였다. ‘다음 지하철을 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괜히 시도했다가 바퀴가 끼여 나 때문에 지하철 운행이 지체되면 어쩌나?’ 등의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때 지하철 안의 시민들이 나와 내 휠체어를 들더니 지하철 안으로 옮겨줬다. 감사의 말을 전하려 위를 쳐다봤지만 발만 보고 있어서 누가 나를 도와줬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불특정 다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종로3가역을 나와 영화관에 갔다. 지금껏 짧은 구간을 왔지만 엘리베이터는 여러 번 탔기 때문에 어느 곳에 엘리베이터가 있을 것이란 감이 잡힌다. 티켓을 끊으려는 곳이 다른 영화관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지만 휠체어를 타니 꽤 높았다. 영화관 직원의 키가 족히 2m는 돼 보였다.

좌석도 맨 앞자리였다. 달리 좌석이 마련된 것이 아닌 기존 좌석 앞에 휠체어를 대고 보는 방식이었다. 현재 전국 영화관에서 휠체어 이용 좌석은 맨 앞이나 뒤밖에 없다.

영화를 본 뒤 ‘여의도 봄꽃 축제’에 가기 위해 다시 종로3가역을 찾았다. 5호선으로 환승한 후 여의나루역에서 내릴 예정이었다. 종로3가역 환승 구간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했다.

역무원을 부른 후 리프트에 탑승했는데 내려가는 동안에 신호음이 너무 컸다. 모두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한 할아버지는 소리에 놀라 가던 길도 멈춘 채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때 갑자기 휠체어가 뒤로 밀렸다. 다행히 역무원이 재빨리 내 휠체어로 뛰어와 고정시켰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후로 2번 더 휠체어리프트를 탔다. 처음 무서웠던 기억에 리프트를 꽉 잡고 전전긍긍하며 승강장까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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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지하철을 탈 때에는 승강장과의 거리가 멀어 지하철 내부의 시민들이 들어 올려줬다. 여의나루역에 도착하니 주말에 꽃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데에는 이미 익숙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축제 장소에 나와 한강 공원으로 내려가려는데, 커브가 가팔라 혼자 올라올 수 없어 보였다.

회사에 돌아가는 길에 저상버스를 타기로 했다. 시간을 잘 맞춰왔는지 약 15분 만에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후문에서 진입 보조철판이 앞으로 나오는데 높은 도로 문턱 앞에서 멈췄다.

이전의 지하철 사이의 틈은 비교할 것이 못 될 정도였다. 화가 절로 났다. 버스에 타고 있던 시민들의 눈이 자연스레 휠체어에 쏠렸다. 또 몇 명의 시민들이 휠체어를 들고 버스까지 옮겼다. 휠체어를 탄 이후로는 지하철이든 버스든 비장애인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은 적이 없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로 돌아오는 길, 시위를 하며 분노하는 휠체어 장애인과 같은 마음이 돼 있었다. 휠체어를 타면 어느 기본적인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전동스쿠터·휠체어 이용자는 약 8만 1369명이다. 여기에 단기간 수동휠체어 이용자까지 더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철저하게 장애인의 시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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